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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표절위원회 출범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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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표절위원회 출범에 즈음하여

입력
2010.01.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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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는 매년 21개 학문분야 별로 250명씩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저자(HCR, Highly Cited Researcher)를 선정해 발표해 왔는데 3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병규 교수를 그 명단에 올렸다. 이로써 HCR에 오른 국내 대학 교수는 4명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인용과 자기표절 논란

국내 대학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수들에게 SCI(과학논문 인용색인)급,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급의 유명한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도록 독려한 지 오래다. 각종 대학평가기관이 유수의 논문집 게재 횟수를 대학평가의 주요지표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이언스, 네이처 같은 SCI급 논문집에 논문을 얼마나 많이 게재하는가 보다 이런 논문집에서 얼마나 자주 인용되는 논문을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이 믿도록 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욱 권위 있는 사람의 주장으로 뒷받침하는데 그것이 '인용'이다. 인용이 많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의 권위를 증명하는 셈이 된다.

그 점에서 HCR에 국내 교수 한 사람이 새롭게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미국 4,099명, 일본 262명에 비하여 4명이라는 숫자는 GDP 기준 세계 15위인 나라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그런데 최근 초라함을 넘어 부끄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SCI급 국제학술지를 총괄하는 미국 톰슨사는 국내 4개 학술지가 인용지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불필요하게 자기인용(self citation)을 하였다는 이유로 SCI 목록에서 이들 학술지의 인용지수를 표시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물게 SCI급 학술지로 선정된 국내학술지가 과도한 자기인용으로 퇴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는 마치 어떤 작가가 직접 또는 지인들을 통해 자신의 책을 마구 사들여 베스트셀러로 만들자 독자들이 현혹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판협회가 베스트셀러 작가 명단에서 그 작가 이름을 삭제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자기인용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꼭 인용해야 할 논문이 같은 학술지에 게재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인용을 피할 경우 자칫 표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이런 논의는 개별 논문의 자기표절(self plagiarism)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신의 선행 논문을 인용 표시 없이 가져다 쓴 경우 자기표절이라고 거센 비난에 직면하는 것이 국내 학계의 현실이다. 자신의 선행 논문임을 밝히고 쓰자니 자기인용이라고 비난하고, 밝히지 않고 쓰자니 자기표절이 되어 논문 쓰기 힘들다는 볼멘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표절과 인용은 양날을 가진 칼이 되어 학술적 글쓰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자의 진정성이 중요

학자가 자신의 사상을 확대, 심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핵심적 사상, 패러다임을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은 학문의 속성상 피할 수 없다. 무조건 자기표절이라고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새로울 것이 거의 없는 논문을 연구 용역과 같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 재탕하여 쓰거나, 승진 재임용을 위한 비경제적 목적을 위해 재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톰슨사의 퇴출 경고도 결국 자기 인용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없는 과도한 자기인용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학술 저작물, 문예 창작물에 대한 표절 의혹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저자의 진정성을 심리하여야 하는 표절 판단은 어려운 문제인 만큼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판정기관의 설립이 절실하였다. 마침 지난 달 저작권위원회 소속으로 발족된 표절위원회가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절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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