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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겨울' 남태령 전원마을에 가보니…"난방은 무슨…" 웅크린 비닐하우스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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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겨울' 남태령 전원마을에 가보니…"난방은 무슨…" 웅크린 비닐하우스 이웃

입력
2010.01.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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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보일러를 쓰면 한 달에 연탄이 90장, 돈으로 따지면 54만원은 들어. 매달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비가 40만원인데 그 비용을 댈 수가 있나. 연탄 값도 많이 올랐어. 저기 쌓여있는 연탄? 실은 (연탄을 땔) 보일러도 없어."

서울에서 경기 과천시로 넘어가는 남태령 기슭의 '전원마을'. 본디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잔디정원과 붉은 벽을 지닌 호화주택이 늘어서서 얻은 이름이지만 그 곁에 달라붙은 극빈층이 사는 비닐하우스마을도 같이 불린다.

행정구역상 서울 서초구 방배2동, 1980년 근처 개발제한구역에 무허가로 비닐하우스를 짓기 시작한 주민들은 누추한 삶을 감추느라 마을 이름만큼은 옆 동네 걸 그대로 쓴다고 했다. 현재는 비닐하우스에 판자까지 덧대 비닐하우스와 판자촌이 공존하고 있다.

6일 전원마을의 비닐하우스들은 이틀 전 내린 폭설로 옴팍 짓눌려 있었다. 설상가상 9년 만에 최악의 한파가 몰아친 이날 집 안에서조차 온기마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혹한에도 난방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냉기가 스며든 이불을 덮거나 근처 사랑방에 모여 한숨으로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연탄난로라도 있는 집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연탄이 있으면 뭘 해, 아궁이가 없는데

홀로 사는 60~70대 노인이나 한 부모 가정이 대부분인 80여 가구는 하루 벌이나 지원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원래는 180가구나 됐는데 대부분의 젊은 층은 가출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했다. 이들은 거의 연탄을 땐다. 이상한 건 집집마다 100장 정도의 연탄이 쌓여있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것.

장은숙(50)씨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여기저기서 도와준다고 연탄을 보내주긴 했는데 겨울을 나기엔 역부족이에요. 연탄 값이 작년보다 15%(개당 550원→600원)나 올랐어요. 만일을 대비해 아껴두는 거에요. 더 추워질지 모르잖아요." 행여 온기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걸 주민들은 오랜 겨우살이를 통해 터득하고 있는 눈치였다.

더 큰 문제는 다음이었다. 연탄보일러 자체가 없는 집도 많았다. 7년째 뇌종양을 앓고 있는 박지영(43)씨는 "한달 40만원을 지원받는데 설비 값만 38만원(설치비는 따로 내야 한다)이나 하는 보일러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의 판자로 때운 비닐하우스 처마 밑엔 온정의 손길로 들어온 연탄 더미가 눅눅히 떨고 있었다.

주민들은 서초구청에서 특히 어려운 가정엔 연탄보일러를 놔주겠다는 약속을 했노라고 했다. 연일 맹추위가 계속되는데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불평하는 주민은 없다. "올해는 요행히 연탄을 지원받았는데 내년엔 어찌될지 모르고, 연탄 값은 매년 오르고…." 곰삭은 외투를 걸친 사내가 말을 흘겼다.

전기장판은 사치다

막노동을 하다 허리를 다친 공덕유(66)씨는 여름휴가 때나 깔 법한 얇은 돗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는 한달 수입은 20만원 남짓. 방 한곳에 전기장판이 있건만 차가웠다.

"전기장판을 틀면 한 달에 4만~5만원은 나와. 전기세가 작년보다 두 배나 올랐어. 2만~3만원도 큰 돈이라 추워서 잠이 안 들 때만 잠깐 켰다가 끄지." 혼자 사는 방안이 더 휑해 보였다.

마을엔 상수도 시설이 없다. 땅 주인들이 허락을 하지 않아 모터를 돌려 지하수를 끌어 쓰고 있다. 공씨는 "전기세가 올라 온수는커녕 찬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전기세를 축내는 모터는 며칠간의 혹한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임광평(68)씨는 "벌써 닷새째 못쓰고 있다"라며 "호스를 녹여야 하는데 물을 끓일 일이 난감하다"고 했다.

원래 무허가라 주소가 없던 이 마을 주민들은 2009년에야 비로소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무허가 건물이라도 전입신고가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판결 덕이다. 주민들이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2010년 1월 이곳 주민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었다. 마을을 들고나는 길은 좁고 지저분했다. 주민들이 파놓은 하수로는 눈과 흙이 뒤엉켜 차량 진입을 어렵게 했다. 그 길을 헤쳐 나오자 말끔하게 제설이 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전원마을은 그렇게 섬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에겐 불문율이 있다. 어른이 없는 집에선 절대 라면을 못 끓여먹는다는 것이다. "난방 할 연탄도, 보일러도, 전기장치도 없는데 화재는 왜 그리 많은지…." 한 주민의 푸념은 슬픈 아이러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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