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공란이 없다. 없는 칸을 만들어도 모자랄 정도다.
'살아있는 전설'은 랜디 존슨(47ㆍ전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8㎝의 큰 키에 왼손으로 160㎞ '광속구'를 던지며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 1988년 몬트리올에서 데뷔한 존슨은 투수 최고의 영예인 사이영상을 5차례나 수상했고, 올스타 선정만도 무려 10번이다. 애리조나 시절이던 2001년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최우수선수(MVP)상까지 거머쥐었다. 2004년 퍼펙트게임으로 최고의 순간을 맛본 존슨은 지난해 개인통산 300승까지 돌파했다. 투수로서 누릴 만한 영광은 전부 누린 셈. 앞만 보고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50이 코앞이다.
'빅 유닛' 존슨이 22년간 정든 마운드와 작별했다. 존슨은 6일(한국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최선을 다했고, 맹렬히 싸웠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말로 입을 뗀 존슨은 "지난 3, 4년간 힘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22년 프로생활은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몬트리올-시애틀-애리조나-뉴욕 양키스-애리조나-샌프란시스코를 거친 존슨의 통산 성적은 303승166패 평균자책점 3.29. 9이닝당 탈삼진 10.61개로 역대 1위, 통산 탈삼진 4,875개의 2위 기록이 말해주듯 타자를 윽박지르는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존슨은 지난 시즌 8승6패 평균자책점 4.88의 평범한 성적을 냈다.
전성기 시절 한 시즌 350개가 넘던 탈삼진은 86개로 급감했다. 완투만 통산 100번을 기록한 존슨은 지난해 한 차례도 완투가 없었다. 왼 어깨 통증으로 두 달 이상 선발로테이션을 거르는 등 악전고투였다. 존슨은 시즌 후 은퇴와 잔류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이날 끝내 글러브를 벗었다.
우승 주역으로 맹활약한 2001년 월드시리즈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존슨은 당분간 애리조나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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