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 회동 제안 진정성 부족… 與 일방통행 제도적 견제 필요"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6일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다수당의 일방통행을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한국일보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상태에서 버티기만 하면 다수당의 뜻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한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청와대가 최근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을 간접 제안한 데 대해 정 대표는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며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진정으로 야당대표와 회동할 의향이 있었다면 언론에 흘리기 전에 물밑 접촉을 통해 의사타진을 하는 게 관례"라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비싼 땅을 대기업에 퍼주려 하고 있다"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정안을 막겠다"고 말했다.
당 소속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환노위에서 노조법을 통과시킨 데 대해 그는 "민주당 소속 환노위원들과 상의 없이 처리한 것은 부자연스럽다"면서 "(징계 문제는)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에 대해 "당연히 지방선거 전에 복당하게 될 것"이라며 "당헌 당규 절차에 따라 이뤄질 것이므로 현재 복당 시기를 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여야가 예산안과 노조법 처리를 두고 대치하다가 결국 여당의 단독 처리로 국회가 마무리됐다.
"분노와 절망이 앞선다. 소수당 존중과 관용이 실종된 국회에서 소수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야당이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연말 여당과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한마디 하면.
"지난 연말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회동을 제안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전하기 위해 즉각 수용했더니 청와대가 이를 거부했다. 의석 수에만 의존하는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를 복원해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게 만들자는 말씀을 드린다."
-야당도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룰을 지키면서 주장해야 한다는 지적들도 많은데.
"야당이 의견을 반영시킬 통로가 제도적으로 막힌 상황에서 무조건 야당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야당에게도 들러리를 서라고 한다면 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 앞으로 여당이 일방 독주한다면 야당은 똑같이 싸울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여야가 룰을 지키면서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하되 안 되면 다수결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한 정당에 표를 몰아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18대 국회처럼 의석 불균형이 심한 경우는 없었다. 미국에는 양당제가 정착돼 있다. 야당이 승복하기 전에 토론을 종결할 수 없고 종결을 위해서는 상원에서 60% 이상의 찬성 의결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정당이 60% 이상의 의석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다른 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우리가 원용해서 일방통행이 불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주식회사는 지분의 51%만 가져도 완전히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청와대는 60~70% 가량 지분을 갖고 있으면 다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회주의에서는 설령 90% 의석을 갖고 있어도 100%를 다 가질 수는 없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여야 대표가 자주 만나야 한다"고 말했는데.
"여야 간에 신뢰가 쌓이면 가능하다. 현재는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생산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정 대표는 오랫동안 무소속이었던 분이어서 한나라당 문화에 덜 젖어 있을 테니 고려해 보겠다."
-민주당 소속 추미애 환노위원장의 노조법 처리에 대한 의견은. 추 위원장 징계 추진에 대해 비판 의견도 있는데
"노조법은 노사 간의 균형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처리된 노조법을 보면 균형이 좀 잡히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원인 추 위원장이 민주당 소속 환노위원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한나라당과 함께 처리한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본다. 원내대표단이 추 위원장을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상태이므로 그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정부가 곧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다. 이미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에 대기업과 대학 등을 유치하기 위해 땅값을 싸게 공급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는데.
"국민 세금으로 만든 비싼 땅을 왜 대기업에 싸게 퍼 주는가. 대기업에 압력을 넣거나 과도한 인센티브를 줘서 유치한다면 정권이 바뀐 이후에 계속 진행될 수 있겠는가. "
-세종시 毓?발표에 대한 민주당의 전략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막아야 한다.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수정안 입법 시도를 막아야 하고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노력도 할 것이다. 서울과 세종시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수정안 추진의 이유로 비효율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설령 비효율이 약간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균형발전이란 가치 구현이 더 소중하다."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기 위해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과 공조할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여야 연대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내 의원 중 상당수가 원안 추진을 찬성하고 있는데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고 굴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산안이 통과돼 4대강 사업이 시작하는데 향후 대책은.
"예산 외에도 수자원공사를 동원해서 금년에만 3조2,000억원을 쓰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예산을 세탁하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다. 올해에도 4대강 사업 예산 집행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정치적 비판을 할 것이다."
- 6ㆍ2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전략은.
"다른 야권, 개혁진영과 연대와 공조를 할 것이다. 인재를 발굴하고 풀뿌리 엘리트를 영입하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수도권 3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관심이 많은데, 승리 목표는.
"다 이기고 싶다. 하지만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니까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서울시장 후보 선출방식은.
"기본적으로 경선 체제로 하고 문호를 넓게 개방해서 서울 시민들이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후보를 발굴하겠다. "
-최근 당내 일부 비주류 의원들이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 방안을 거론하는데. .
"당내에서는 설득력을 얻고 있지 않다고 본다. 당 대표로서 조기 전대에 신경쓰기 보다 지방선거에 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
-개헌론과 행정구역개편론에 대한 입장은.
"개헌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전에 정략적으로 활용돼선 안 된다. 행정구역개편 문제에서는 철학과 큰 방향을 만들어놓고 지역 주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한 다음에 시행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행정구역 개편은 졸속으로 서둘러 진행되고 있다."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방향은.
"인도적 지원을 하고 6ㆍ15, 10ㆍ4 정상 선언을 계승, 발전시키는 쪽으로 가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은 필요하다. 다만 신뢰 관계를 만들고 남북 양측의 자세 변화가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서민 경제 회복 방안이 있다면.
"정부는 과거 정권들이 확충해놓은 수출 기반을 활용해서 근근이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내수 진작이 이뤄지지 않고 일자리 확충이 어려운 것은 현 정권의 정책 실패 탓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서민과 중산층은 계속 고단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 "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에 다시 도전할 것인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연말까지 대여 투쟁에 바빴고 지금 모든 관심은 지방선거 준비에 있다. 결국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평가 받게 될 것이다."
-차기 대선에 나설 생각인가.
"나는 계보가 없는 정치인이고 대권팀을 꾸리지도 않았다."
-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긍정 평가도 많지만 대선주자로서의 지지도는 오르지 않고 있는데.
"대권은 아직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니까 현재로선 별 관심이 없다."
-혹시 '튀는 발언'을 자제하기 때문이 아닌가.
"요즘 내가 대통령 비판도 많이 하고 있다."(웃음)
-새해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건강한 야당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야당에 대한 애정과 비판, 성원을 부탁 드린다. "
인터뷰=김광덕 정치부장
정리=김회경 기자
■ 정세균의 2010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2010년은 도전의 해가 될 것 같다. 새해를 맞은 정 대표의 머리 속에는 6ㆍ2 지방선거 준비로 가득 차 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은 차기 대선으로 가는 유리한 길목을 차지할 수 있지만 정반대의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정 대표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게 된다면 정 대표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재도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선전하지 못한다면 정 대표의 입지도 좁아진다.
정 대표는 2008년 7월 당 대표로 선출된 뒤 1년 6개월 동안 당을 별 탈 없이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해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잇따라 승리를 이끌어냈다. 또 미디어법 투쟁 과정에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뚝심을 가진 정치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 대표의 앞길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리더십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대중적 지지도를 올려야 한다. 당 안팎에 포진한 거물급 라이벌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춘천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는 언제든 정계 복귀를 선언할 수 있고,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공천 갈등으로 탈당한 정동영(DY) 의원도 최근 복당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정 의원과 가까운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 DY 복당과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해 내홍이 발생할 경우 정 대표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 민주당이 최근 여권의 발목만 잡는 정당으로 비친 점도 정 대표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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