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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세상의 불빛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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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세상의 불빛 한 점

입력
2010.01.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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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보태줄 것 없어

마음만 숨가쁘던 그대 언덕길

기름때 먼지 속에서도

봉숭아는 이쁘게만 피었더랬습니다

우리 너무 젊어 차라리 어리숙하던 시절

괜시레 발그레 귓불 붉히며

돌멩이나 툭툭 차보기도 하고

공장 앞 전봇대 뒤에 숨어서

땀에 전 작업복의 그대를

말없이 바라보기나 할 뿐

긴긴 여름해도 저물어

늦은 땟거리 사들고 허위허위

비탈길 올라가는 아줌마들을 지나

공사장 옆 건널목으로 이어지던 기다림 끝엔

언제나 그대가 있었습니다

먼 데 손수레 덜덜 구르는 소리

막 잔업 들어간 길갓집 미싱 소리

한나절 땀으로 얼룩진 소리들과 더불어

숨가쁜 비탈길 올라가던 그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허방을 짚는 손에

야트막한 지붕들은 덩달아 기우뚱거렸댔습니다

그대 이 언덕길 다할 때까지

넘어지지 말기를

휘청거리지 말기를

마음은 저물도록 발길만 흩뜨리고

그대 사라진 언덕길 꼭대기에는

그제 막 보태진 세상의 불빛 한 점이

어둠속에서 참 따뜻했더랬습니다

● 덕길들을 생각합니다. 코흘리개 시절, 큰집 마당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해가 저문다는 걸 알고 허겁지겁 넘어가던 언덕길. 무서워서 그 길이 더 멀게만 느껴졌지요. 대학에 다닐 때, 장마가 찾아오니 언덕 너머에 있던 그 자취방으로는 빗물이 주룩주룩. 그게 싫어서 며칠 동안 친구집에서 실컷 놀았지요. 그리고 비 그친 어느 오후에 그 방으로 돌아가려고 올라가던 언덕길. 내가 가야 하는 곳이 거기만 아니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땐 몰랐었죠.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거기 한 점 불빛은 보인다는 거. 대개 우리가 의지하는 건 그렇게 불빛 한두 개라는 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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