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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년특집/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 레흐 바웬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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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년특집/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 레흐 바웬사에게 듣는다

입력
2010.01.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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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붕괴 시작을 알린 폴란드 독립자치노동조합 '솔리대리티'. '자유노조'로 불리운 솔리대리티는 1980년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파업을 이끌며 폴란드에 민주ㆍ자유화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자유노조가 뿌린 씨앗은 1989년 4월 자유선거와 자유노조 합법화를 쟁취함으로써 공산정권의 실질적 항복을 받아내는 결실을 맺었다.

자유노조의 파업을 진두지휘해 19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민주화된 폴란드에서 첫 민선 대통령을 역임한 레흐 바웬사(66). 폴란드를 필두로 닫혔던 동유럽 등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한국이 러시아 등 구 공산국가와 국교를 맺기 시작한지 20년이 흐른 지난달 말 그단스크시 두기타르그 거리 24번지 바웬사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995년 대선에서 알렉산드르 크바시니에프스키 당시 야당 후보에 패한 뒤 정치 평론가이자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바웬사 전 대통령은 솔리대리티가 동구권에서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첫 투쟁이었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서는 미국만의 전쟁이 됐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두고는 "노벨상이 위험에 처했다"고 말하는 등 시종일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폴란드가 국민 반발에도 불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했다. 최근 아프간 증파 계획도 밝혔다. 미국에 지나치게 접근하는 것 아닌가.

"폴란드는 전쟁 경험이 많은 나라로 2001년 9ㆍ11테러 때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봤다. 유엔에서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지만 미국은 즉각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래서 폴란드는 미국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미국과 함께 나서지 않았다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다음 테러 목표는 모스크바였다. 런던이나 파리에서도 테러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세계대전이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를 막으려 했고, 폴란드는 그런 미국을 도운 것이다."

-아프간 전쟁이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닌가.

"예상과는 달리 미국이 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그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유엔의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늦게 참여했다. 빨리 끝내야 했는데, 미국도 세계도 두 번째 걸음을 늦게 내디뎠다. 지금은 미국만의 전쟁이 됐다. 폴란드는 처음에 도왔기 때문에 끌려 가고 있는 셈이다. 좋은 생각으로 했는데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

-한반도는 냉전 이후 유일하게 남은 분단지역이다. 북한도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미 통일이 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북한과 한국, 모두 실수가 많았다. 한국은 통일을 원하지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정부나 사람들이 통일을 간절히 원했다면 나를 더 자주 초대했을 것이고 나도 도움을 줬을 텐데… 만약 내가 북한에 살았다면 벌써 통일이 됐을 것이다(웃음)."

-폴란드식 노조 운동을 통한 북한 민주화를 말하는가.

"비슷한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북한과 달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뒤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신앙을 믿었기 때문에 북한보다 민주화가 쉬웠다."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이끌려면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북한 같이 모든 것이 정상적이지 못한 나라를 개혁ㆍ개방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평화와 긴장관계가 적절히 조화돼야 한다.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선택해야 한다."

-40대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같은 상을 받았을 때 "누구, 오바마?"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 그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나.

"내가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두 가지다. 계속 해온 투쟁을 평가 받았고, 또 하나는 계속 투쟁하라는 의미로 상을 줬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수여함으로써 노벨상은 이룬 것 없지만 노력하라는 의미로 주는 상이 됐다. 그런 면에서 기자 당신도 노벨상을 받을 이유가 생겼다. 세계 평화와 관련된 좋은 기사를 쓰라는 의미에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위험한 발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 놓을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결과가 나쁘면 상을 반납하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다. 노벨평화상(존립)을 위험하게 하는 결정이었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경제와 정치 면에서 모든 체제가 바뀌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 굉장한 변?아니겠나. 긍정, 부정의 양면이 존재하지만 변화라는 것이 원래 양면을 함께 받아들이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1980년 8월 14일(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일)은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당시 상황은.

"파업 시작 이듬해 경찰에 체포됐다. 나머지 조합원들이 계속 파업을 했다. 중요한 것은 공산당이 어떻게 나오든 평화적으로 투쟁하기로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점이다. 공산당의 총ㆍ칼 탄압에도 불구, 평화 투쟁이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우리는 투쟁에서 승리했고 1989년 공산주의 붕괴로 연결됐다."

-폴란드가 동유럽 민주화의 시작이란 의미인가.

"동유럽 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1980년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있었다. 이곳에서 공산주의와 싸워 처음으로 이겼다. 10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항해 투쟁을 했다. 특히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유약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많은 나라들이 폴란드를 본받아 싸우면서 공산주의를 이겨냈다. 폴란드 독수리가 '러시아 곰'의 이빨을 뽑았다. 민주화의 중심은 폴란드다. 다른 나라가 폴란드를 보고 싸워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폴란드에 민주화가 정착됐다고 보는가.

"민주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세 가지다. 법, 시민의식 그리고 돈이다. 법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시민들이 민주화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폴란드에는 법은 제대로 돼 있지만 다른 두 가지는 좋지 않다. 공산주의가 40여년 동안 사람들을 너무 변하게 했다. 정신적으로 고정관념을 심었고 경제를 포함해 모든 면에서 힘들게 했다. 사람들을 민주화와 자본주의에 맞추려면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젊은 계층은 체제 변화를 선호하는 반면 고령자들은 부정적인데.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면에서 변화가 있었다. 대중들은 대부분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안정된 것을 선호하는데 그 이상의 변화가 있었다. 공산주의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 때문에 여전히 고령자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실 나도 그 때가 그립고 자주 회상한다. 그때는 젊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너무 싫다. 공산주의와 싸워야 한다면 지금도 싸울 수 있다. 공산주의는 악이었다. 문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180도 바꾸기 보다는 천천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과거 소련블록 국가들의 외국자본에 대한 과대 의존이 불안요소라는 지적이 있다.

"과거 폴란드 등 중동부유럽 국가는 소련블록에 속해 서로 협력관계였다. 특히 경제는 70~80%가 모스크바에 의존했다. 공산주의가 없어지면서 그만큼의 자본이 사라졌다. 당연히 수출도 없어졌다. 처음부터 같이 일할 나라, 수출할 나라를 찾아야 했다. 빨리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서유럽 자본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공산주의 경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도 서유럽과 협력이 필요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경제가 발전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자본의 70~80%를 잃으면 (폴란드처럼 빨리)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외국은 돈을 벌고, 폴란드 국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1995년 대선 패배 이후 정치에서 물러났다. 정치를 완전히 떠났나.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정계로 돌아가기는 싫다. 폴란드 대통령에겐 힘이 없다. 미국 대통령처럼 힘이 많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폴란드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힘이 많은 대통령을 두려워한다. 국민들 생각이 바뀌면 다시 할 수도 있다. 준비는 돼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인으로 평가 받고 싶은가.

"진실된 평가만을 원한다. 민주화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나에 대한 평가도 좋을 것이다. 반대일 수도 있다.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나는 내가 믿는 것을 이뤄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계속 걸어온 길을 갈 것이다. 일관된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나를 감옥으로 보내기도, 대통령이 되는 길을 만들기도 했다. 나의 삶이 또 어떤 쪽으로 이어질지 나도 기대된다."

■ 약력

▦1943년 폴란드 포포보 출생

▦1969년 다누타 골로스와 결혼

▦1970년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전기공으로 취업

▦1976년 해직

▦1978년 불법 지하노조인 자유무역연합에 가입

▦1980년 8월 14일 레닌 조선소 파업위원회 위원장

▦1981년 12월 체포돼 11개월 간 옥살이

▦1983년 노벨평화?수상자 선정

▦1989년 솔리대리티 자유노조 위원장

▦1990년 12월 폴란드 최초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

▦1995년 12월 대선 패배

▦1996년 그단스크 조선소 전기공으로 출근했다가 이후 정치평론가로 활동

그단스크=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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