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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보수적인 아카데미상 '검은 영화'의 벽 허무나

입력
2010.01.0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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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티 맥다니엘(1895~1952). 1940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오스카 트로피(여우조연 부문)를 거머쥔 최초의 흑인이다.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의 풍채 좋은 유모 마마 역을 연기했다. 세월이 흘러 2002년 '몬스터 볼'의 할리 베리가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흑인 여자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무려 62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흑인 배우로 한정하면 아카데미상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후한 편이었다. 1964년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덴젤 워싱턴(1990년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2005년 제이미 폭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주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아카데미상이 흑인 배우들에게 최근 문턱을 낮추고 있다지만 여전히 야박하기 그지없다. 지난 81년 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호명된 영화는 약 460편. 그 중 흑인이 제작하거나 감독한 이른바 '검은 영화'(Black Film)는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감독상 부문에서도 인종의 벽은 높기만 하다. 18년 전 존 싱글턴이 '보이즈 앤 후드'로 후보에 오른 게 흑인으로서는 유일하다.

이렇다 할 대표 감독이 없어서일까? 그렇진 않다. 1989년 '똑바로 살아라'로 미국 영화계에 혁명과도 같은 바람을 일으킨 이래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역할을 해온 스파이크 리의 피부색은 검다. 칸국제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그의 연출력을 인정했지만 아카데미상은 매번 고개를 저었다. 마치 미식축구에서 두뇌 플레이가 필요한 쿼터백은 흑인이 맡을 수 없다는 오랜 편견처럼 위대한 흑인 감독과 제작자는 있을 수 없다는 그릇된 시각이 작용한 것일까.

최근 미국에서는 흑인 감독 리 다니엘스의 '프레셔스: 사파이어의 소설 푸쉬를 기초로 한'(Precious: Based On The Novel Push By Sapphire)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1,000만 달러를 들여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두 달 사이 미국에서만 4,35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빈민가의 뚱보 흑인 소녀가 성폭력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첫 '검은 영화'가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슬슬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이 만들어낸 소위 '오바마 효과'에 대한 기대도 따른다. 아카데미상 부문별 후보가 발표되는 2월 3일에 할리우드의 눈이 쏠리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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