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문화계를 이끌 주역들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떠오르는 샛별부터 중견의 타이틀을 어깨에 걸머진 이들까지, 그들의 몸짓에서 그리고 손 끝과 펜 끝에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은 우리 문화의 역동성이 분출된다.
"테크닉이 뛰어난데다 어린 나이에도 예술성까지 겸비한 무용수이다."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리는 발레 스타 이원국(42)씨는 제자 김기민(17)군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군은 지난해 6월 모스크바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고, 12월에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를 맡아 사상 최연소로 열여섯 살에 주역 데뷔를 한 떠오르는 샛별이다.
김군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다는 이원국씨는 "음악성이 뛰어나고 동작 습득이 굉장히 빨랐다"고 회상했다. "하루는 '돈키호테' 지방공연 10분 전 급히 김군을 투입하게 됐는데, 어깨 너머로 배운 동작을 훌륭하게 해내서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춘천에서 형과 함께 취미 삼아 발레를 시작한 김군은 이원국씨를 만난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레의 길을 걸었다. "롤 모델은 예나 지금이나 이원국"이라는 그는 한국발레협회 주최 콩쿠르에서 초등부 특상, 중등부 대상을 각각 받았고, 예원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 때 한예종에 입학했다. 2008년에는 로마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쥐며 탄탄대로를 걸은 발레 영재다.
김군은 그러나 "영재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다리가 휘었고 무릎이 튀어나와 발레에 타고난 몸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로지 연습에만 매진했다고 했다. 요즘도 매일 최소 6~7시간 이상 연습한다. "한 동작을 할 때 어떤 자세가 적합할지 여러 각도에서 연구해요.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슬픈 영화나 책을 보고,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지요." '백조의 호수' 파트너였던 박세은(20)씨가 한 인터뷰에서 "기민이는 아는 것도 많고, 연구도 많이 한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린 나이에 한예종에 입학한 때문인지 그는 또래보다 의젓해 보인다. 지도교수인 김선희 교수는 그런 김군에게 '애늙은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김군은 "연습벌레 같은 별명을 얻고 싶었는데 아쉽다"면서도 "누나, 형들과 잘 어울리는 성숙함도 장점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그의 어른스러움은 스스로의 춤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도 드러났다. "잘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섬세한 표현에 약해서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나 유학파 친구들을 제치고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을 수 있었고, 운이 좋아 빨리 주역무대에 서게 됐다"며 겸손을 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는 학교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내년 2월 조기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군은 "관객들에게 나 자신만의 색깔로 감동을 주고 싶다"며 "나아가 한국 남성 발레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새해 소망은 소박하기만 했다. "안 다치고 좋은 무대에 많이 서고 싶어요. 한동안이라도 발레를 못하면 정말 슬픈 일이거든요."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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