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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6> '정음'과 '세종'의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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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6> '정음'과 '세종'의 수난시대

입력
2010.01.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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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庚寅年)은 세종 임금의 <훈민정음 서문> 을 다시 읽어 새해를 맞는다.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나라 글로 '한글[正音]'과 글을 만드신 세종 임금의 이름이 모두 수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음이 어떤 글인가? 세종 임금이 몸소 쓰신 이 머리말에 잘 밝혀져 있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글로는 그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이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어여삐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널리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나라 말이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글자도 달라야 한다는 뜻은 훈민정음의 제일 전제이며, 민족 문화의 독립 선언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안 사람들이 어리석은 백성들이었고,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가장 잘 실어 펼 수 있는 글자를 만든 뜻을 천하에 알리는 선언이 이 머리말이다.

옛부터 "하늘이 듣는 것은 백성이 듣는 데서 시작한다"고 일렀다. 이것을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에서는 "아마도 하늘이 성군(聖君)의 마음을 여시고 그 손을 빌린 것이리라"고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를 쓴 함석헌(咸錫憲) 선생은 훈민정음 창제를 한국 역사의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하고, 그 뜻을 "씨알의 자각운동이 싹트는 민족 역사사건"으로 풀었다.

"하늘이 하는 일이겠지. 씨알이 죽지 않은 증거겠지. 세종이 어질기도 하지만, 이것이 씨알의 요구인 것을 어찌하나? …이제는 민중을 가르치지 않고는 할 수가 없게끔 역사의 행진이 거기까지 온 것이다"고 했다.(<한국역사> 257쪽) 역사 사상가로서 그가 '씨알'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이 이 대목에서였다.

씨알이 누군가? 말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 하지 못하는 백성, 아낙네며 서민이다. 그래서 정음을 '언문'이라 하고 '암클'이라고도 했을 터이다. 19세기에 이 땅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이 '암클'에 주목하여 아낙네들과 서민들을 가르쳐 선교하고, 한글 보급에도 공을 세웠다.

문자의 생명성은 실용성에 있다. <세종이 발명한 최고의 알파벳 한글> (루덴스)을 쓴 김영욱 교수(서울시립대)는 LG전자 손전화의 <획 추가> 원리와 삼성전자의 <천지인> 원리를 들어 한글 창제와 쓰기의 원리를 명쾌하게 풀었다.

이런 정음 창제의 원리와 중요성은 한국 신학(神學) 철학 쪽에서는 우리말로 신학하기(김흥호ㆍ이정배 목사들), 우리말로 철학하기(이기상 교수) 등에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한글을 깨우친다. 그런데 요사이 글을 보면 평생 국어를 가르쳐 온 나로서도 모르는 말 투성이다. 한글학자 정재도 선생은 6년째 우리말로 바꿀 한자말 7만 낱말을 정리했다고 한다.

공공문서 공공언어는 어려운 한자말 투성이에다 법률 용어는 일본말 찌꺼기에다, 교육은 영어 몰입교육 소동으로 영어 망령. 여기에 '세종시' 문제까지, 지금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정음'과 '세종'의 수난시대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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