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집에서 쿡해."
2009년 가장 화제가 된 KT의 브랜드 광고다. KT는 지난해 화제의 광고만큼이나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석채 회장이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를 합병하면서 너무나 빠른 변화가 급물살처럼 KT에 몰아쳤다.
파격 변신의 상징 '쿡'
조직 통합보다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브랜드의 변화다. 과거 KT의 초고속 인터넷과 유선 전화 등을 알리는 브랜드는 '메가패스' 등 공기업 분위기를 풍기는 딱딱한 이름들이었다.
그만큼 공기업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브랜드'쿡'의 등장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지난해 4월 내놓은 쿡은 KT의 변화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쿡은 집에서 사용하는 유선 전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TV(IPTV) 등을 모두 망라한 대표 브랜드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미가 들어 있다.
이용자들이 각종 통신 서비스를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의미와 버튼을 눌렀을 때 접속하는 모습을 표현한 의성어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 번의 조작으로 집 안에서 쉽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편리함과 즐거움을 담고 있는 브랜드이다. 과거 공기업 분위기에서는 쉽게 나오기 힘든 의성어 느낌을 살려 예전보다 젊고 역동적인 기업 이미지를 담았다.
쿡이 성공적인 브랜드로 꼽히는 이유는 상품의 통일성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유선전화는 '쿡 집전화', 초고속 인터넷은 '쿡 인터넷', 인터넷전화(VoIP)는 '쿡 인터넷전화', IPTV는 '쿡 TV'로 통일해 제품 인지도와 연계성을 강화했다.
새로운 브랜드를 알리는 작업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본격적으로 쿡 브랜드를 발표하기 전에 항공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거대한 광고 문안을 경기 분당의 KT 사옥 옥상에 설치한 것.
이를 촬영한 항공 사진이 인터넷 포털 다음에 퍼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은 새로 탄생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집에서 쿡'이라고 적힌 빨간 천을 집 밖에 내걸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TV 광고였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집에서 쿡'할 것을 권고하는 광고는 해학적이면서 의미심장했다.
KT 관계자는 "정신적 피로가 늘어나는 불황기에는 웃음을 주거나 따뜻한 감동을 주는 광고가 효과적"이라며 "광고 대행사 오리콤이 불황기 성공 광고 사례로 꼽았고, 브랜드평가 업체인 브랜드스톡도 지난해 2분기 100대 브랜드 6위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부 기관의 평가는 KT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0대 히트상품으로 '쿡'브랜드를 꼽았다. 불황에도 차별성을 강조한 혁신 가치의 사례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합 브랜드 '쿡앤쇼'로 확장
요즘 쿡은 '쿡앤쇼'라는 결합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쿡앤쇼는 KT의 VoIP와 KTF의 이동통신을 결합한 서비스다. 집에서는 집전화로 쓰고 들고 나가면 휴대폰이 되는 이 서비스는 브랜드도 KT의 쿡과 과거 KTF 시절 3세대 이동통신을 뜻하는 '쇼'를 그대로 결합했다.
쿡앤쇼는 KT가 통합 법인으로 출범한 뒤 처음 내놓은 결합 브랜드다. 여기에는 브랜드 결합을 뛰어넘어 고객에게 2배의 혜택을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휴대폰에서 집전화로 전화를 걸면 3분당 324원의 요금이 부과되지만 쿡앤쇼를 이용하면 VoIP 수준인 3분당 39원의 요금이 부과돼 비용을 약 88% 절감할 수 있다. 휴대폰에 전화를 걸 경우에도 10초당 18원이 부과되던 요금을 10초당 13원으로 28% 줄일 수 있다.
KT는 이 같은 쿡앤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쿡앤쇼 체험단'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 이용자 50명으로 구성된 체험단은 지난해 11월 말에 발족했으며 약 한 달동안 쿡앤쇼 서비스를 체험하게 된다. KT는 체험단이 경험 후 내놓는 의견을 서비스와 브랜드 홍보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쿡앤쇼 브랜드와 관련해 "쿡앤쇼 브랜드는 KT가 합병을 통해 최근 정보기술(IT) 분야의 새로운 경향인 융합(컨버전스)을 완성시켰다는 의미가 있다"며 "융합은 이용자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며 요금을 줄여주는 등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쿡 브랜드 '지휘자' 남규택 전무
"쿡의 성공은 KT 직원들의 힘이 하나로 결집된 결과다."
남규택(49ㆍ사진) KT 통합이미지담당 전무는 '쿡''쿡앤쇼' 등 KT가 내세운 모든 브랜드를 통합 관리하는 일을 한다. 한마디로 브랜드 지휘자다.
남 전무는 쿡 브랜드를 정하瘦沮?곡절이 많았다. 우선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KTF와 합병 전에 통합 브랜드를 알리는 작업이 시급했기 때문에 작명부터 로고와 광고 제작까지 3개월 안에 마쳐야 할 정도로 촉박했다"고 회고했다.
후보로 올라온 브랜드만 300여개. 남 전무는 수 많은 후보 명칭들 가운데 유선 통신 서비스를 사용하는 공간인 집의 느낌이 들면서 자회사인 KTF의 이동통신 브랜드 '쇼'와 어울리는 한 음절 단어를 주로 찾았다.
그는 "버튼을 누를 때 나는 소리이면서 집에서 여러 가지 요리를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며 "요리를 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 cook에서 c를 빼고 품질(quality)을 나타내는 q를 끼워 넣었다"고 설명했다.
호주를 처음 발견한 영국의 쿡 선장 이름도 한 몫 했다. 남 전무는 "모험 정신을 상징하는 쿡 선장의 이름이 KTF와 합병을 앞두고 국내 최초 유ㆍ무선통합 업체로 가려는 KT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브랜드를 알리는 작업에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광고 기법인 티저 광고가 도입됐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자극적 문구가 도입된 것도 같은 이유다.
관련 TV 광고에는 연예인 변우민과 산악인 엄홍길씨가 등장해 웃음을 자아냈는데 처음에는 다른 모델들이 거론됐다. 남 전무는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999'의 철이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을 후보로 고려했으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고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브랜드를 알리는 작업에는 전 직원이 동원됐다. 광고 문구를 적은 붉은 천을 전 직원에게 나눠주고 아파트 베란다 등에 걸도록 했다. 또 일부 직원들은 자동차에 쿡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으며, 전화를 받을 때 흘러나오는 통화 연결음도 광고에 나오는 노래로 교체했다.
남 전무는 "이석채 KT 회장도 직접 집에 현수막을 걸었다"며 "쿡 브랜드 알리기는 3만7,000명 직원이 모두 동참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고 강조했다.
남 전무가 쿡 브랜드 지휘를 맡은 것은 그의 전력 때문이다. 그는 2007년에 KTF에서 영상통화의 대명사로 꼽히는 '쇼' 브랜드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6개월에 걸쳐 쇼 브랜드를 두고 고심했다. 그는 "처음 쇼가 후보로 올라왔을 때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제외시켰다가 다시 고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남 전무는 쿡이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선정한 10대 히트 상품에 꼽혀 누구보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의 올해 목표는 '우자일'을 정하는 것. 우자일이란 창의성을 발휘하는 우뇌를 자극하는 날을 말한다.
그는 "한 달에 하루 우자일을 정해 팀원들과 영화나 공연을 보거나 시장 등을 쏘다니며 창의성의 밑바탕이 될 영감을 얻을 것"이라며 "조만간 도입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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