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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아, 白虎 2세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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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아, 白虎 2세 부탁해!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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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내 맹수사육장. 호랑이 24마리 중 독방을 쓰는 호랑이는 '백운'밖에 없다. 사육사 편현수(47)씨가 먹이를 주기 위해 우리 근처로 다가가자 다른 호랑이들은 허연 콧김을 내뿜으며 철창에 매달려 먹이를 독촉했지만, 백운이만은 사뭇 달랐다.

방사장(동물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에서 놀다가 편씨의 부름에 우리로 들어선 백운이는 낯선 기자를 보고 멈칫했다가 이내 철창 너머 편씨 손에 얼굴을 부볐다.

길이 2.6m, 체중 153㎏의 당당한 몸집답지 않은 애교였다. "우리 흰둥이, 그래 많이 보고 싶었지?" 편씨가 애정 담뿍한 손길로 녀석을 쓰다듬는다. 백운이는 기자가 자리를 피하자 그제서야 생닭을 먹기 시작했다.

암컷인 백운이가 유난한 건 부끄럼 많은 성격만이 아니다. 흰 구름(白雲)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녀석은 동물원 유일의 백호(白虎)다. 노란 바탕에 검정 줄무늬를 지닌 황호(黃虎)와 달리 백운이는 하얀 바탕, 초콜릿색 줄무늬를 갖고 있다.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도 백호 13마리가 있지만 모두 벵골호랑이로, 시베리아호랑이인 백운이와는 혈통이 다르다. 백운이는 2000년 9월 서울대공원에서 황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백두산호랑이, 한국호랑이로도 불리는 시베리아호랑이 중 백호가 나올 확률은 10만분의 1로, 그 확률이 1만분의 1인 벵골호랑이보다 훨씬 낮다.

귀한 몸이 행여 동료들과 다투다 큰일날까 싶어 동물원은 백운이가 태어나자마자 혼자 우리를 쓰게 했다. 백두산호랑이는 벵골호랑이보다 덩치가 크고 송곳니 길이가 6㎝나 돼 서로 싸울 경우 상처를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백운이는 사람을 잘 따라 사육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어릴 적 녀석을 돌봤던 엄기용(57)씨는 "어미 호랑이가 출산 후 자식들을 돌보지 않아 백운이는 줄곧 젖병으로 우유를 먹으며 자랐다"며 "독방 생활에 외로움을 타는지라 우리를 보면 재롱도 피우며 잘 따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운이를 키우는 '아빠' 사육사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나이가 찼는데도 녀석이 수컷에 도통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백운이의 올해 나이는 열 살. 사람으로 따지면 마흔에 가깝다.

암컷 호랑이가 보통 3세가 되면 성적 성숙기를 맞는 것을 감안하면 새끼 낳기에 좋은 시절을 벌써 7년이나 허송한 셈이다. 사육사들은 결혼에 무관심한 노처녀 딸을 보는 아비의 심정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아빠들이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2006년 당시 세 살짜리 수컷 '청이'를 사윗감으로 점 찍고 백운이와 짝을 지어주려 했다. 두 호랑이를 한 우리에 집어넣으면서 친해질 시간을 주기 위해 두 달 동안 임시 창살을 설치했는데, 서로 으르렁대던 두 녀석은 다행히도 차츰 창살 사이로 얼굴을 부비는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창살을 빼니 파국이었다.

백운이는 청이의 접근에 시큰둥했고 급기야 귀찮게 한다며 청이의 허벅지를 물어버렸다. 편씨는 "백운이가 자기보다 세 살이나 어린 풋내기 청이를 좋아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라며 "청이는 이듬해 북한에서 온 낭림이와 결혼해 지금도 같은 우리를 쓰며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굴할 부정(父情)이 아니다. 사육사들은 경인년(庚寅年) 호랑이 해인 올해 기필코 백운이를 시집 보내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더 미뤘다간 녀석이 암컷의 본능마저 잃어버릴까 싶어서다.

특히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 해. 경(庚)자가 주역에서 흰색을 뜻하기 때문인데, 백호랑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큰 일을 한다는 게 역학계 속설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사는 수컷은 모두 일곱 마리. 그 중 네 마리가 아직 어려서 수컷 구실을 할 수 없고, 성숙한 녀석 둘은 백운이와 어미가 같다. 그래서 청이가 다시 남편감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편씨는 "청이가 몸집도 커지고 힘도 세졌으니 백운이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요즘 청이가 하체 비만 조짐이 있어 다이어트를 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육사들은 3월 러시아에서 건너올 수컷 두 마리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다. 편씨는 "시베리아호랑이 중 백호가 드물다지만 중국에선 백호가 대를 건너 태어난 사례가 있었다"며 '백호 손주'에 대한 은근한 바람을 드러냈다. 백운아, 부디 올해는 튼튼한 범띠 호랑이 손주를 안겨다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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