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용산 참사의 희생자까지. 거기에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있었고, 심리적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죽음도 있었다. 그 죽음들을 보면서 나 역시 죽음을 전보다 더 자주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정말로 죽음이 삶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출판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라는 책을 펴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 오츠 슈이치가 말기 환자 1,000여명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 후회하는 것들을 모은 책이다. 죽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남에게 친절과 선행을 더 베풀었더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유산 분배를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이처럼 유별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할 수 있는 후회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 있는 동안에도 늘 하는 후회다.
일만 죽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노동시간이 매우 긴 한국인으로서는 특별히 새겨야 할 지적이다. 과중한 업무에 개인의 삶을 포기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은데 오츠 슈이치의 전언에 따르면 일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일 중독자는 열이면 열 모두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 반드시 후회한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말들을 찬찬히 씹어보면, 죽는 순간 그나마 후회를 적게 하려면 결국 살아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죽음과 삶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새해 첫날 죽음이니 후회니 하는 것들을 언급한 것은, 가능하다면 우리와 세상을 돌아보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해마다 새해가 밝으면 우리는 마음 속에 소망을 품고 그것이 이뤄지도록 기원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것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삶에서 희망을 찾으며 세상을 어느 정도는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의지, 나의 기대와 상관 없이 세상사가 펼쳐질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부질없는 집착은 버리고 공허한 욕심은 멀리하며 집요한 미련은 떨쳐내자고. 대결하듯, 남과 싸우듯 살지 않고 마음을 약간은 비운 듯 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해보자. 명분에 밀리고 남의 시선 의식해 하지 못했던 것, 올해는 한번 해보자. 그것은 세상사에 눈 감는 것이 아니라 눈 앞의 이익과 욕심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나와 우리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오츠 슈이치가 지적한 것처럼 죽을 때 조금은 덜 후회할지 모르겠다.
내가 하기에는 너무 이른 이야기인가. 세상은 무한경쟁의 시대로 질주하는데 공연한 관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박광희 문화전문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