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해 온 선진 7개국(G7)은 이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더 이상 세계경제 문제를 해결할 대표 협력체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주요 20개국 그룹(G20). 정상회의로 격상된 지 불과 1년 만인 2009년 11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는 G20을 국제 경제협력을 위한 명실상부한 최상위 포럼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2010년 11월. 선진국 정상들이 서울에 총 집결한다. 선진국이 아닌 신흥국에서 열리는 첫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 중심이 돼서 위기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논의한다.
'코리아'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북돋운다. 회의장의 모습은 어떨지 또 어떤 내용들이 논의가 될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미리 그 현장을 살펴 본다.
■ 미리보는 G20 정상회의
2010년 11월 어느 날 오후. 서울 외곽 상공을 분주히 오가던 헬기가 멈춰 선다. 드디어 각국 정상들의 서울 진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인천공항에서 서울 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전면 통제됐다 풀리기를 반복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세계 경제ㆍ정치를 주름잡는 각국 정상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대표들을 태운 차량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국민들은 마치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들을 지켜보는 양, 외신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5년 전인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훨씬 능가하는 초호화 멤버들이다.
저녁 7시 무렵, 숙소에 짐을 푼 정상들이 속속 만찬 리셉션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30여분 뒤, 이 대통령의 인사말로 리셉션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렇게 각국 정상들을 뵙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며, …" 이어 우리나라 전통주로 건배 제의가 이어졌다.
이튿날 오전 9시께 G20 정상회의 본 세션이 시작됐다. 이른바 '서울 서밋'. 오전 회의에 이어 오찬, 다시 오후 회의로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이전까지 G20 정상회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발등의 불을 끄는 게 당면 과제였다면, 2010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4차 회의에 이어 이번 5차 회의는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21세기 두 번째 십년(2010~2019년)을 장식하게 될 글로벌 의제들이 이 자리에서 논의되는 셈이다.
이날 회의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국제금융감독 규제의 틀을 새로 짜는 것. 경제 위기가 금융규제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금융규제 개혁은 G20 정상회의의 핵심 쟁점일 수밖에 없다.
앞선 정상회의를 통해 금융규제 개선을 위한 국제기준 마련과 시행 일정 등에 대부분 합의만 상태. 이날 회의에서는 은행자본 규제 방안과 금융회사 감독 강화 방안, 그리고 향후 이행 일정 등에 대해 집중 논의가 이뤄졌다.
또 하나 첨예한 쟁점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 "중국 등 신흥국들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미국 등 선진국들에 맞서 신흥국들은 "위기 시 자본 유출을 차단할 수 있는 금융안전망을 구축하는 문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버텼다.
선진국 위주로 구성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 개편 문제도 회원국들간 이견이 적지 않은 사안. 회의 내내 상당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의장국인 한국의 중재력과 리더십으로 합의도출에 성공했다.
이날 저녁 정상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을 끝으로, 각국 정상들은 하나 둘 자국행 특별기에 올랐다. 이튿날 국내외 언론들은 G20 정상회의의 성과에 대해 극찬을 쏟아낸다. 'G20, 강력한 국제공조에 합의''G20,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 되다''한국, 성공적 중재자 역할 수행!'….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G20을 준비하는 사람들
규모로 보나 비중으로 보나 이번 정상회의가 가지는 의미가 각별한 만큼 행사를 준비하는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는 실력파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준비위원장에 사공일 무역협회 회장을 비롯, 준비위에는 윤증현 재정부 장관 등 18명의 각료들이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고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 이창용 전 서울대 교수, 안호영 외교통상부 조정관 등 중량감 있는 인물들이 밑에서 실무를 챙기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업무를 시작하는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국제금융ㆍ경제계에 가장 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사공일 위원장은 1년 가까이 주말 없이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국제기구, 준비위 관계자는 "각국 정책 최고결정권자들과의 의견 교환은 전화를 통해 수시로 하고 있다"며 "주말엔 세계 경제동향은 물론 다양한 세계 정세에 관한 자료들을 읽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G20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배경이 금융위기 극복과 기후, 환경, 에너지 안보 등 전세계 공통의 문제 해결인 만큼 가장 분주한 인물은 이창용 기획조정단장이다. 의장국에 부여된 의제개발, 각국과의 사전 조율을 통한 의제설정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특히 정상회의 때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 '셰르파'(sherpaㆍ정상 대리인) 역할을 겸하고 있어 의제에 관해 누구보다 포괄적이고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상회의 선언문 작성자들이 각국 셰르파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단장은 최근 학교(서울대학교)에 사표를 내고 정상회의 준비에 '올인'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 주어진 과제 중의 하나는 금융 위기 극복과 위기 극복 이후의 세계 경제 성장모델 제시. 때문에 윤증현 재정부 장관과 신제윤 차관보가 기획조정단장 못지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이들은 11월 정상회의 이전에 당장 4차례의 재무장관회의와 재무차관회의를 주재해야 한다. 의장국 재무장ㆍ차관으로서 회의 의장직을 수행하게 되지만 단순히 사회를 보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디어도 내야하고 수시로 이뤄질 서면교환과 전화회의 등을 통해 각국의 의견차도 좁혀야 한다. 이들은 경시경제, 금융분야 등의 의제를 이끌어 내게 된다.
안호영 외교통상부 조정관도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G20 정상회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임무가 부여됐다. G20에 들지 못한 나머지 나라들의 의견을 취합, 정상회의의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 뛰는 역할인데, 그 접촉 대상이 국제연합(UN) 회원 기준으로 172개국에 이른다.
새해부터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활동하는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대를 모으는 인물이다. 표면적으로는 국제경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금융 가정교사' 이지만, G20 정상회의 준비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신 교수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금융ㆍ통화정책 분야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 개최가 갖는 의미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 19세기 후반 한국을 찾은 영국 여행가 겸 작가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그 때는 그랬다. 변화와 개방 물결에 뒤쳐 쳤던 한국은 글로벌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 곧바로 낙오자이자 패배자가 됐다.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 남의 힘에 의존한 해방, 분단, 빈곤과 독재로 이어진 지난 세기는 가히 '어둠의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한국이 마침내 세계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다. G20 정상회담 개최. "회의 하나 개최한다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오버"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세계를 이끌어가는 20개 나라의 정상들이 서울에 모이고,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결코 저절로 이뤄질 수 일은 아니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나라 가운데 한국만큼 빠르게 위상이 높아진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회의 유치 후 가진 특별 회견에서 "G20 정상회의 유치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G20의 역할과 그 정상회의의 의미가 각별한 만큼 개최국인 우리나라로선 유ㆍ무형의 큰 효과들이 예상된다. 말 그대로 '건국이래, 아니 단군이래 최대의 이벤트'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압도적 규모
효과를 계량화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번 G20정상회의는 2000년 서울서 열린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나 2005년 부산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능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 국내서 열린 국제회의 중 참가 정상들의 수로 보면 ASEM이 가장 크다.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등 유럽 주요국과 아시아 지역 국가 26개국의 정상과 수행원 등 4,700여명이 한국을 찾았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회의는 여기에 비해 참가국 수는 적었지만 행사 규모는 더 컸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국 정상을 합쳐 21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는데, 정상들을 따라 방한한 수행단 규모는 7,000명을 웃돌았다.
11월 G20 정상회의 참가국 수는 20개로 적은 편이다. 이들을 그야말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파워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규모를 더하면 전세계 GDP의 85%를 차지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오는 미국측 수행단 규모만 1,000명에 달하고, 주요국 정상들도 각각 최소 200명 이상의 수행원을 이끌고 방한하는 등 정상회의 참석자 수가 1만명은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20개국의 정상 외에도 지역대표와 국제기구 수장 등 정상급 인사들이 이끌고 올 인원, 정상회의에 앞서 열릴 예정인 각료회의, 재무장관회의, 준비기획단 회의 등의 참가자들까지 감안하면 방한자수는 모두 1만8,000~2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기대 효과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도 역대 어느 회의보다 클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분석한 2005년 APEC 회의의 경제적 효과는 4,700억~6,700억원. 여기에 고용유발효과, 홍보효과 등을 모두 감안하면 약 1조1,0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부 회의 준비 과정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APEC 회의를 능가하는 유ㆍ무형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경제 효과도 효과지만, 정작 정부가 기대하는 곳은 다른 데 있다. 국가의 위상 변화와 같은 간접 효과다. 성공적인 회의 개최로 발생한 국가의 위상변화가 계량할 수 없는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국격(國格)' '코리아 브랜드가치' 상승에 따른, 돈으로 환산키 힘든 수확인 셈이다.
국제 신인도 향상이 그렇다. 실제로 한국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펀더멘털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된 신인도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이지매'를 당하곤 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하지만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된다면 한국산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수출 증가 등 경제적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원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이 같은 효과는 모두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G20 정상회의를 선진국 도약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일회성 이벤트 행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준비해야 하고,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기여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G20의 탄생
1973년 오일쇼크는 선진 7개국(G7) 모임을 태동시켰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선진국들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이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이탈리아, 캐나다가 차례로 합류했다. 이후 G7(97년부터는 러시아가 합류하면서 G8으로 확대)은 매년 정상회담과 재무장관회의를 개최하면서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그로부터 25년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G7(또는 G8)을 대신할 새로운 체제를 요구했다.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이미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신흥국들의 협조 없이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심지어 '죽은 G7(the late G7)'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
G7의 자리를 대체할 체제를 두고도 경합이 치열했다. 애당초 유력 후보는 G13이나 G14였다. 2005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이 초청되면서 G13이 구성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여기에 이집트를 추가해 G14로 개편하자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신흥국들의 협조가 필요했던 상황.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G13에 한국을 비롯해 호주, 터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참여하는 G20의 손을 들어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10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자 하는데 꼭 와줘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했고, 이 대통령은 즉각 받아 들였다.
한 달여 후(11월15일), 정상회의로 격상된 G20 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 창설 회원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G20의 운명은 여전히 불안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가 정례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발적인 회의체에 그치고 말지 당시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G20 정상회의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경제협의체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올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3차 정상회의에서였다. 이 회의에서 각국은 G20 정상회의 정례화에도 합의했다.
G20 체제가 와해되는 경우 다시 세계의 주변국으로 쫓겨날 수 있었던 우리나라로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것. 게다가 2010년 G20 의장국인 동시에 11월 5차 정상회의 개최국이라는 푸짐한 선물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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