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일을 끈 난산이었다. 협상 당사자로 나선 범대위와 서울시 대표들간 만남만 100여 차례, 전화통화는 수백 통에 달했다는 전언이다. 의견접근과 결렬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결국 협상의 물꼬를 트고, 마지막 담판을 이끌어낸 것은 종교계 지도자들의 중재였다.
올 7월까지만 해도 협상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유족 측은 경찰 강제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 사과, 진상 규명 및 수사기록 공개 등을 요구한 반면, 서울시는 용산참사를 '철거민 과실로 일어난 사건'으로 규정했다. 유족 측의 보상 요구에 대해서도 "민간개발이기 때문에 보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양측이 접점을 찾기 시작한 것은 8월. 한국교회봉사단 등 종교계가 장례비 지원안 등을 제시하면서부터였다. 8월14일에는 양측 협상 대표들이 악수를 하고 헤어질 정도로 타결이 임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협상내용이 언론에 알려지고 막판 일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렬됐다.
9월에 민주당이 제안한 정부ㆍ서울시ㆍ민주당ㆍ용산범대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에 그 동안 개입을 거부해왔던 서울시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협상테이블이 마련되는 듯했으나 이마저 흐지부지됐다.
10월부터 종교계가 협상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중재에 나서고, 새로 취임한 정운찬 총리가 추석을 맞아 용산참사 분향소를 방문해 적극적인 사태해결 의지를 밝히면서 협상의 불씨가 조금씩 살아났다. 하지만 단식농성을 하던 문규현 신부의 입원, 국정감사 등으로 대화는 결렬과 재개를 반복했다. 그러다 12월 들어 서울시가 내부적으로 '어떻게든 연내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마지노선을 정하고, 협상에 융통성을 보이면서 협상타결 임박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29일 오후 4시30분 양측은 종교계 중재로 만나 막판 협상을 시작했고, 30일 오전 6시30분까지 이어지는 14시간의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르게 됐다. 협상에 참여했던 시 관계자는 "종교계 지도자들의 중재로 합의된 사항이 다시 뒤로 후퇴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봉사단 김종생 사무총장은 "'어찌됐건 사람이 죽었는데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며 인도적 접근을 요구한 게 주효했다"며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수배자 문제 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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