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우리가 따낸 것이 연말 뉴스의 초점이 됐다. UAE를 구성하는 7개 에미리트(Emirate)의 하나인 두바이의 부침(浮沈)에만 관심을 갖던 사회에서는 UAE와 두바이를 연결하거나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도 하다. 두바이를 놓고 저마다 호들갑을 떤 우리사회 보수와 진보는 200억 내지 400억 달러라는 원전 프로젝트 규모에 다 함께 압도 당한 분위기다. 원전 공사 수주에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게 나도 이상하지만, 그게 경제 전문가조차 쉽게 정치에 매몰되는 우리사회의 편협한 세상 인식이 아닌가 싶다.
■UAE는 몇 년 전까지 우리 외교통상부가 아랍토후국연합이라고 불렀다. 에미리트 지도자 에미르(Emir)를 과거 일본이 토후(土侯)로 번역한 유산인 듯하다. 실제 에미르는 중세 이슬람과 아랍 세계에서 숱한 부족장(Sheikh) 가운데 강력한 힘을 지닌 아미르(Amir)를 영국인들이 편하게 표기한 것이다. 과거 중국이나 중세 유럽 기준으로는 봉건 제후(諸侯)로 부를 만하다. 이걸 굳이 토후라고 칭한 것은 사막의 무지몽매한 유목집단 수장에게 문명적 정치체제의 지도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꺼린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단면일 수 있다.
■그러나 UAE는 기원전부터 시리아 이라크 오만 이란 등 강국 사이에서 교역 중심으로 번성한 노회한 국가다. 인도 중국과도 교류했다. UAE 면적의 5%에 불과한 두바이가 수도 아부다비보다 유명한 것도 아라비아 반도와 아시아, 유럽을 잇는 전통의 무역항인 덕분이다. UAE는 두바이를 대표로 내세웠지만, 두바이의 성장을 뒷받침한 부(富)의 원천은 국토의 85%와 석유자원을독점한 아부다비이다. 세계가 두려워한 두바이의 부도 위기를 아부다비가 간단히 해결한 것은 상징적이다.
■1985년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둘러본 적이 있다. 오만 국경절에 초대돼 한달 여 머무는 사이, 대우(大宇) 두바이 지사의 친구를 찾았다. 방산 물자수출에 애쓰던 친구는 "유대인보다 더한 놈들"이라는 푸념으로 저들의 노련한 상술, 요즘 말로 탁월한 협상력을 전했다. 나는 비도 오지 않는 사막도시 아부다비 곳곳에 수도관을 심어 광화문 광장보다 화려한 꽃밭을 가꾼 도전에 놀랐다. 중동 산유국 가운데 가장 모범적 성장과 비전을 과시하는 바탕일 것이다. 그 중심은 도로 철도 댐 발전 등 인프라 구축이다. 그 인프라 꽃밭을 '상인 정신'으로 공략해 성공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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