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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타루 '오늘,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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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타루 '오늘, 오늘이'

입력
2009.12.3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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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허접. 완전 추잡, 내 사는 꼬라지, XX 청승" 고시원 한구석에서 청춘을 축내는 청년이 사설을 뽑아낸다. 실은 88만원 세대의 한 서린 사연이지만 판소리 가락에 얹혀 나오니, 묘한 힘과 흥으로 살아난다. 무대 한켠에서 극 진행에 맞춰 나오는 영문 자막은 이 무대의 착탄점이 나라 밖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의 '오늘, 오늘이'는 판소리가 어떻게 동시대와 함께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결과다. 서구적 뮤지컬과 전통 창극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들의 기량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판소리극이다. 무대 전면의 벽에 바싹 붙어 남녀 악사들이 빚어 올리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 아쟁, 장고의 선율은 흥겨우면서도 처량하다.

이 무대를 이끌어가는 힘은 세 사람(남자 1명, 여자 2명)의 젊은 소리꾼에게서 나온다. 객석을 향해 펼치는 아니리는 푸지고, 사설에 힘을 실어 보내는 발림은 힘차다. 각종 판소리 대회에서 대상이나 최우수상을 따낸 그들의 연기는 창극 무대와 뮤지컬 무대의 특장점을 한 데 묶어낸다. 판소리는 1인 예술이라는 통념을 거부, 세 소리꾼에게 골고루 사설을 분배한다. 판소리의 단순한 확대가 아니다. 세 사람은 소리꾼에 머물지 않고 무대 전체를 활발하게 만들면서 배우로서의 기능에 충실한다. 판소리를 양식적으로 확충한 새 악극 양식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이 무대는 우리 고유의 문화 자산을 어떻게 시대의 변화에 조응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도 하다. 제주도 무속 신화 '원천강 본풀이'의 주인공인 '오늘이' 캐릭터의 응용이라는 일련의 흐름에서 가장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발레, 어린이극, 동화책, 애니메이션 다양한 장르로 변신하고 있는 설화의 최근 버전인 것이다.

이 작품은 내년 5월 싱가포르의 아트마켓에 참여해 본격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 타루는 한 달 뒤에는 용산국립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대표작인 '판소리, 애플 그린을 먹다'를 공연, 극단의 위상을 확인한다. 이 연희 집단의 자랑은 단원들이 10년 이상 국악을 전공했으되, 그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루는 판소리 용어로 '기교'라는 뜻이다.

무대는 시각적으로 정제돼 있다. 제주 신화를 민화적 양식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극의 진행에 맞춰 투영돼 현재와 신화적 세계 간의 경계를 허문다. 내년 1월 3일까지 게릴라극장.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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