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와 이계전은 친구였다. 세종 때 정음청(正音廳)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일을 같이했다. 이계전은 글 잘하는 이색의 손자이다. 혈통 때문인가? 이계전도 할아버지를 닮았는지 글을 잘 했다. <세종실록> 편찬을 비롯해 국가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외교문서도 많이 썼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이계전의 능력을 인정했다. 세종실록>
그런데 1453년 6월에 계유정란(癸酉靖亂)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이 반대파인 김종서(金宗瑞) 등을 격살하고, 안평대군을 사사한 쿠데타이다. 당시 이계전은 병조참판으로 입직하고 있다가 쿠데타에 참여했다. 그는 최항(崔恒)과 함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까닭을 알리는 교서를 썼다. 수양대군의 편에 선 것이다.
이 쿠데타로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가 되어 전권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종친청(宗親廳)에 숙직하고, 이계전은 병조판서로 승진해 빈청(賓廳)에 숙직했다. 이어 이계전은 정란 1등공신이 되어 전지 200결, 노비 25구를 받았고, 한성군(韓城君)에 책봉되었다.
1455년 윤6월에 단종이 상왕으로 ?겨나고 세조가 섰다. 이계전은 다시 좌익 2등공신이 되어 토지 100결, 노비 10구를 받았다. 이들 토지는 지금 분당 중앙공원 근처에 주어졌던 것 같다. 이곳은 이후 이계전 자손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1455년에 단종복위 음모가 발각되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권자신 등이 세조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이계전은 세조 편에 섰지만 조카 이개(李塏)는 사육신에 포함되어 처형되었다.
역적의 땅은 몰수되어 공신들에게 분배되었다. 이개의 충주ㆍ임피(臨陂)의 전지는 이계전에게 분배되었다. 조카의 땅이 삼촌에게 간 것이다.
그러나 이계전은 하위지 등과 함께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정면으로 반대했다. 세조는 이를 발의한 하위지를 끌어내려 곤장을 치고 참형에 처하려다 그만두었다. 이계전도 사정전 잔치에서 세조에게 술이 과하니 그만 대내(大內)로 들어가시라고 했다가 머리채를 잡혀 끌어내려가 곤장을 맞았다.
그리고 세조는 이계전을 불러 춤을 같이 추면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하면서 오늘 너를 욕을 보였으니 거기에 상응하는 은전을 베풀겠다고 했다. 그 후 세조는 이계전이 이개의 삼촌이라고 연좌죄를 적용하자는 것도 억누르고, 죽을 때까지 특별 대우를 했다. 고도의 정치술수였다.
그 결과 이계전은 단종 복위운동에 끼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상소를 올렸던 하위지, 권자신, 박쟁 등은 그 운동에 참여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일부는 이계전처럼 세조의 공신이 되어 훈구파를 구성하고, 일부는 이개와 같이 사육신ㆍ생육신에 소속되어 후세 사림들의 절의의 표상이 되었다.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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