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리뷰/ 영화 '나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리뷰/ 영화 '나인'

입력
2009.12.29 05:16
0 0

현장감. 무대가 스크린을 제압할 수 있는 최고의 우성인자다.

박력 넘치는 음향과 배우들의 땀내, 사소한 실수 하나조차도 무대는 그 순간만의 농밀한 기억으로 남긴다. '오페라의 유령'과 '렌트' 등 스크린으로 옮긴 유명 뮤지컬이 김빠진 맥주나 콜라처럼 느껴지던 이유도 현장감의 부재 때문이다.

그러나 호사스러운 뮤지컬 영화 '나인'은 고막과 동공을 황홀하게 압박하는 라이브의 감동이 스크린에서도 가능함을 증명한다.

캐스팅부터 눈부시다. 이보다 화려할 수가 없다. 수식어가 무의미한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창작의 고통에 빠진 바람둥이 영화감독 귀도로 출연해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라 비 앙 로즈'로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배우 마리온 코틸라르가 순정한 아내 루이사를 연기한다. 스페인 출신의 뜨거운 여인 페넬로페 크루즈가 귀도의 정부 칼라가 됐다.

'007'시리즈로 낯익은 주디 덴치가 방황하는 귀도에게 등대 역할을 하는 의상디자이너 릴리로, 추억의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귀도의 어린 추억을 자극하는 어머니 맘마로 등장한다. 서글서글한 금발 미녀 케이트 허드슨이 귀도를 유혹하는 패션지 기자 스테파니로 출연, 스크린에 화려한 색감을 더한다. 여기에 신비로운 여배우 클라우디아역의 니콜 키드먼까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포만감에 빠뜨릴 배우들이 노래와 춤까지 선사한다. 게다가 이들의 지휘자는 롭 마셜 감독이다. 브로드웨이 안무가 출신인 그는 데뷔작인 뮤지컬영화 '시카고'로 작품상 등 2003년 아카데미 6개 부문을 가져갔다.

기대는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었을 이 영화는 정열적인 음악과 여배우들의 아찔한 춤사위, 일사불란한 군무로 여러 감각기관을 사로잡는다. 특히나 배우들의 연기는 이름 값이 아깝지 않다.

절정은 유명 힙합 그룹 블랙아이드피스의 보컬 퍼기가 끌어올린다. 그가 어린 귀도에게 관능의 날카로운 첫 키스를 남긴 뒷골목 여인 사라기나로 나와 부르는 '비 이탈리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람료의 가치를 다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는 가사를 따르듯 마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노래하고 춤춘다. 그 노래와 춤을 받치는 리드미컬한 편집도 뜨겁고 폭발적이다.

아쉬움도 있다. 이야기의 밀도가 너무 낮다. 새 영화 '이탈리아'의 촬영을 앞둔 귀도의 방황은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도 같다. 수 많은 여인들의 유혹을 거친 끝에 구원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동명 뮤지컬을 밑그림 삼았고, 뮤지컬은 고전영화 '8과 1/2'(1963)을 원작 삼았다. '길' 등을 남긴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8과 1/2'을 통해 창작의 고통을 신화적으로 해석해 갈채를 받았다. 깊이로 치자면 영화 '나인'은 원조에 비할 수 없다. 하지만 지적 쾌감보다 신체적 감각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한 이 영화에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제작비는 1억 달러로 뮤지컬영화 사상 최고다.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