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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코웨이 '감성연구실' 에선…쉿! 그녀 몸짓을 모두 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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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코웨이 '감성연구실' 에선…쉿! 그녀 몸짓을 모두 훔쳐라

입력
2009.12.2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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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대 연구공원 웅진코웨이 연구개발(R&D) 센터의 구석에 있는 10평 남짓한 방.

씽크대 위에 정수기가 놓여 있고 식탁, 냉장고까지 언뜻 봐선 가정집 주방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검은색 유리가 보이고 천정에는 폐쇄회로(CCTV)로 짐작되는 조그마한 카메라들이 달려 있다.

검은 유리창 너머 방은 더 알쏭달쏭했다. '미러룸'이라는 이곳에서는 4대의 모니터가 복잡하게 움직였고 모니터 1대는 실시간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리는 정체 불명의 이 곳의 이름을 묻자 센터 관계자는 '감성연구실'이라고 소개했다.

2006년 문을 연 이 연구실은'소비자의 손짓 몸짓 하나하나를 파헤치는' 곳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실제로 쓰는 환경과 똑같이 만들어 진 공간에서 소비자가 어떻게 제품을 쓰는 지를 관찰하고 이를 분석한다.

그 결과를 '제품 기획 단계→모형(mock-up) 제작→제품 최초 테스트→최종 테스트'로 이어지는 제품 개발 과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지과학이 있다는 게 연구실 김현정 박사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하고 관련 교수로 일했던 그는 "사람이 제품을 사용할 때 기억, 감각, 언어 등 여러 인지적 특성이 반영된다"며 "소비자의 인지적 특성을 고려한 인간 중심의 제품 개발이 목표"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좀 더 편하고 안전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제품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고 김 박사는 강조했다. 과거 한국의 소비자들은 싸고 튼튼한 물건만 찾았지만 이제는 예쁘면서도 쓰기 편한 제품을 선호하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가전 회사들 역시 3,4년 전부터 이런 변화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구실에서 실험 대상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 없이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품을 쓸 때 손가락의 움직임, 허리를 숙이는 각도, 문을 열고 닫을 때 얼굴 표정까지 천정의 카메라가 여러 각도에서 생중계를 한다.

김 박사는 "단순히 제품 써보니까 좋다, 안 좋다라고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만 가지고는 정확한 반응 조사가 어렵다"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한 숨을 쉬거나 땀을 흘린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실을 찾는 이들도 다양하다. 가전 제품을 주로 쓰는 20∼30대 여성들이 주류지만 아저씨, 할머니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연구실을 찾아 실제 제품을 체험하게 한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연구실에 종종 들른다.

얼마 전 유럽 시장에 내놓을 비데를 테스트하기 위해 여러 체형의 외국인을 선발해 연구실 내 화장실로 모시기도 했다.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했음에도 이들은 물 줄기는 세기는 적당한지 , 안기에 불편하지 않은지, 버튼은 복잡하지 않은지를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당황했다고 한다.

"난감하더라도 정확한 반응을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시치미 떼고 묻고 또 물었다"며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국내형보다 더 크게 만들고 디자인은 단출하게 만들었다"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연구는 연구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집을 찾아 같은 제품을 쓰는 과정을 꼼꼼히 살핀다.

감성연구의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게 회사 측의 평가. ▦밀고 당기는 방식만 있던 정수기에 버튼 방식을 도입하거나 ▦아담한 크기만 있던 음식물처리기를 높고 크게 만들고 ▦복잡해서 알아볼 수 없었던 비데의 버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등 감성연구의 결과를 적극 반영한 제품이 모두 시장의 호평을 얻고 있다. 김 박사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정수기의 버튼 위치와 조명을 바꿨더니 오작동률이 4배나 줄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내년부터는 감성연구실의 평가를 통과하지 않은 제품은 출시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등 감성연구를 보다 공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활용할 방침이다. 아울러 버튼 음, 작동 소리 등 소비자의'귀'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적 설계

사람이 제품을 쓸 때 기억, 사고 과정, 감각, 언어 등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인지적 특성이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 아래 제품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인지적 특성을 고려한 인간 중심 제품 설계.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1970년대부터 적용이 돼 왔으며 우리나라에는 4,5년 전부터 삼성, LG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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