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에서 미각에 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질문을 해 왔다. 미각을 위한 훈련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는데 결국 훈련을 통해 절대미각이 될 수도 있는 지가 포인트였다. 가만있자, 내가 아는 사람 중 음식 맛을 보다 잘 느끼기 위해 혀를 단련시키는 사람이 있나?
내가 아는 일부 요리사들이나 소믈리에들 가운데 술과 담배를 극도로 자제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혀가 본래 갖고 태어난 기능대로 수행하려면 잘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겠다. 혀를 마비시키고 오염시키는 술, 담배, 자극적인 음식 등을 일체 배제한 식단은 미각을 발달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나의 대답에 "그럼 박재은씨도 음주 안하시나요"라고 다시 질문이 왔다. 나는 혀의 미각 감지 기능을 위해 음주를 자제해야 하는, 요리하는 사람이지만 맛있는 음식에 곁들여지는 반주 한잔을 마다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는 또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올 한 해 나와 많은 일들을 했던 사람들과의 송년회 자리였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어릴 적에는 같은 동네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이나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과 더 할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는 일 얘기, 내년도의 계획이나 지난 분기의 실적에 관한 이런저런 의견들을 교환할 수 있는 친구들이 더 나의 흥미를 끈다. 일로 만났지만 서로 됨됨이가 마음에 들어 한 해 두 해 관계를 쌓아가게 되면 어릴 적 만난 동네 친구보다 더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젯밤 회식은 모두 삼년, 오년 정도의 세월 동안 많은 일을 함께했던 이들이 대부분 참석했고 허기를 채우고 술잔이 몇 번 돌아가면서 각자의 내년도 계획을 말하게 됐다.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 일을 줄이고 쉬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이와 결혼에 골인하고 싶은 사람, 가족의 건강을 비는 사람, 넓은 작업실로 이사를 가고 싶은 사람. 우리는 서로의 꿈을 듣고 격려해 줄 수 있어 행복했다. 일을 많이 하고 싶다 하여 일이 오는 것은 아니며, 일을 줄이고 싶다고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서로의 계획을 나누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이들이 10명이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 자리에서 미각을 키우기 위해 술을 마다하기란 힘든 것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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