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불황을 먹고 자라는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불황이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문학에서 위로를 찾았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09년 국내문학과 해외문학 분야의 판매율은 지난해에 비해 각각 40%, 35%나 성장했다. 외형적으로 큰 성취를 거둔 2009년의 한국문학. 그 안과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신경숙, 인터넷 소설
"책을 출간할 때 이렇게 팔릴 줄 몰랐다." 2009년 9월 <엄마를 부탁해> 의 100만부 판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신경숙씨가 고백한 것처럼 <엄마를 부탁해> 는 작가조차 예상못한 경이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순문학으로 최단 기간(11개월)에 100만부 돌파, 14개 국가와 해외 판권 계약, 연극 상연 결정, 영화ㆍ뮤지컬화 추진 등 이 소설은 2009년을 명실상부한 '신경숙의 해'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질주로 정신적 거처를 상실한 한국인들에게 이 소설의 '모성 코드'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성의 신화라는 이데올로기 생산을 통해서 시대적 보수화와 일정 부분 공모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엄마를> 엄마를>
<즐거운 나의 집> (2007)으로 가족서사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던 공지영씨가 장애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사회성 짙은 소재의 소설 <도가니> 로 흥행몰이를 이어간 점도 흥미롭다. 25만부 이상 팔린 <도가니> 는 통속적 서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문제점을 동물적 감각으로 포착했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문학의 블루칩'으로서 공씨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도가니> 도가니> 즐거운>
2007년 박범신씨의 <촐라체> 로 물꼬를 튼 순문학 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올해는 확고한 대세로 자리잡았다. 2009년은 일간지나 문예지 연재 후 단행본 출간이라는 기존 소설 출간의 공식이 '인터넷 연재-단행본 출간'이라는 시스템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알린 해였다. 김훈씨의 <공무도하> , 박민규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오현종씨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 이기호씨의 <사과는 잘해요> 등은 이런 과정을 통해 책으로 묶였다. 지금도 이제하, 황석영, 구효서, 김종광, 정한아씨 등 10여 명의 작가들이 인터넷에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사과는> 외국어를> 죽은> 공무도하> 촐라체>
이에 대해서는 지면 제약을 뛰어넘어 장편소설의 활성화라는 한국문학의 오랜 숙원을 자연스럽게 해결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지만 "유명작가들만의 잔치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학과 현실, 정치
지난해 촛불집회에 이어 올해는 신년 벽두의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이 이어지며 작가들이 거리로 나선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각계의 시국선언이 이어진 가운데 한국작가회의도 시국선언문을 냈고, 이와는 별도로 김연수 김근 윤이형 전성태씨 등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192명의 문인들이 '작가선언 6ㆍ9'라는 대정부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문인들의 인터넷신문 릴레이 기고, 피켓시위 등로 이어졌고 용산참사 추모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 역입니다> 가 출간되기도 했다. 지금>
과거 군사독재 시절 문인들의 사회참여가 운동 차원의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면, 올해의 이 같은 움직임은 문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느슨한 형태의 연대라는 점이 차별적이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등 주요 계간지들은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를 여러 차례 특별기획으로 다루었다.
현실 정치와 관련한 문인들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며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다"고 말해 '변절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사후 블로그에 "현 정부가 말 그대로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으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인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아 인사청문회에서 입길에 올랐던 정운찬 총리의 행적을 옹호한 시인 김지하씨의 글도 논란이 됐다. 그는 9월 한 일간지에 '천만원짜리 개망신'이라는 글을 싣고 정 총리를 공격한 야당 의원들을 원색적인 언어로 비난했다. 그러자 소설가 장정일씨는 계간 '실천문학' 겨울호에 김씨의 기고를 패러디한 '탁'이라는 시를 발표, 선배 문인의 발언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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