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은 '직장인의 로망'이다. 그러나 수출입은행 경제협력부 아프리카팀은 다르다. 출장을 가게 되면 오히려 걱정을 해 주는 동료들이 더 많다. 아프리카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 경제협력부가 하는 일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ㆍ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을 개발도상국이나 극빈국에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위해 선진국으로부터 낮은 금리에 차관을 들여왔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1987년 처음으로 179억원의 차관을 개도국에 지원한 이래 꾸준히 그 규모를 늘려 오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1조3,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경제협력부는 경협 사업을 발굴하고 심사한 뒤, 한국과 상대국 정부가 승인을 하면 실제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진행을 맡는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로 출장 가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올해 8월 아프리카팀을 맡게 된 오은상 팀장은 연말까지 두 번이나 아프리카 출장을 다녀와 앙골라와 카메룬, 말리 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왔다. 특히 농업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 면화농장 개발에 3,100만달러가 이미 지원된 앙골라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500㎞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일산 신도시의 2배 넓이 면적에 농장을 만들고, 생산물 보관 창고와 교육센터 및 관련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 팀장은 "한국 농어촌공사가 파견한 지도사가 현지인들에게 영농기술까지 전수해 준다"며 "아프리카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표적인 경협 사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말리 출장에서는 '정부 행정망 구축사업'과 관련, 통신부장관 등을 긴급 면담했다. 한국 업체의 참여를 전제로 추진되던 이 사업이 막판 중국의 견제로 무산될 위기에 빠졌기 때문.
오 팀장은 "아프리카에 대규모 원조를 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며 "우리가 제시한 지원 조건이 좋아 당초 계획대로 추진키로 확정됐으나, 막판에 사업권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현재 이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도 돕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돕는 보람 있는 일이지만 현지 출장은 쉽지 않다. 특히 출국 전후 맞는 말라리아 예방 주사는 고역이다. 말라리아 예방주사의 경우 국내 독감 예방주사에 비해 접종 후 피곤해지는 정도가 훨씬 크다. 이 때문에 현지 교민이나 주재원 중에는 아예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현지 직항노선이 없는 것도 애로 사항이다. 오 팀장은 "말리와 앙골라 출장을 갔을 때는 서울을 출발해 파리를 거쳐 말리에 가서 일을 본 뒤, 다시 유럽으로 갔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서 앙골라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2주일 일정의 출장이라면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5~6일이나 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치안이 불안해 밤에는 호텔 방에서 가져 간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건 애로 사항도 아니다.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출장을 갈 때마다 커피메이커 등 각종 생활용품을 모두 챙겨가는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가끔 출장 가는 사람보다 훨씬 더 고달픈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탄자니아 주재원인 이혜경(36ㆍ여) 책임심사역이다. 올해 1월 자원해 탄자니아의 경제 수도인 다레살람에 부임한 그는 현지 정부 및 관계 기관과 협력 채널을 구축하고 EDCF 사업을 발굴, 진행하는 것이 원래 임무다.
그러나 수출입은행 전체에서 아프리카에 파견된 유일한 직원이다 보니, 인근 국가에 대한 현지 조사나 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미혼 여성인 이 심사역이 현지 근무를 자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러나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학 때부터 개도국에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며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개도국 및 후진국에서 근무해서 현지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처럼 탄자니아의 인프라 사정은 열악하다. 국민 대부분이 전기와 수도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대부분이 다레살람의 외국인 거주지역 아파트에 몰려 사는 것도 발전기를 갖추고 있고 물탱크를 통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
한국처럼 광속으로 통하는 인터넷은 꿈도 꿀 수 없다. 속도가 무척 느리고 월 500MB 사용료로 6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유선 전화망이 깔려 있지 않아, 휴대폰을 주로 사용하지만 대역폭이 좁아 툭하면 불통이 된다.
하지만 더 골치 아픈 건 판존??대륙 전반에 흐르는 '천천히' 마인드다. 탄자니아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 '함나 시다(문제 없다)' '케쇼(내일)' 같은 말들이다.
이 심사역은 "한국에서는 상사가 오늘 지시하면 내일 즉시 보고해야 하지만, 탄자니아는 다르다"고 말했다. 현지 직원을 다그치면 '뽈레 뽈레'라고 미루고, '언제까지 해 줄 거냐'고 물으면 '케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음날 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팀 모두 이런 어려움보다는 경협사업을 진행하며 얻는 보람이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유정선 선임심사역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경우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현지인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우리나라를 본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아시아에 비해 EDCF 지원 비중이 낮았지만, 최근 이 지역 정부들이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고 우리도 많은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질과 양적인 측면 모두에서 협력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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