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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경인년 성탄절 이브, 피란길 음성서 태어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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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경인년 성탄절 이브, 피란길 음성서 태어난 나

입력
2009.12.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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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성탄절 이브(당시 우리에게 성탄절의 의미가 있었을까?)에 시골집 초가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지가 60년 전이란다.

동란을 피해 서울에서 무거운 몸으로 충북 음성 골짜기까지 내려와 무사히 몸을 푸신 어머님 덕분에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나로서는 가히 지난 그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흩뿌려 지나간다.

나의 뇌리에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는 경인년 모월모일생인 나!

언뜻 나 자신은 마냥 젊을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라는 꼬리말을 들으며 어색해하는 내 모습에서 시간과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불만족한다. 반백이 된 머릿결을 매일 보면서 영원히 검게만 유지될 줄 알았던 숱이 유난히 많은 내 머릿결에 유감도 많다.

아무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할아버지로 지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불려지는 경인년 12월24일생 나 이기용.

간혹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매우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곤 '내가 그리도 힘 없는 노인으로 보이나?' 하는 생각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서 가기를 고집한다.

주위에서 그리 생각할수록 나는 더 이상 늙은 노인으로만 지내기를 강하게 거부하는 마음이 생긴다. 더구나 요즘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얼마를 더 무탈하게 건강한 생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세월을 어떻게 보낼까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나이쯤이면 직장에서도 거의 은퇴하고 사회에서도 변방에 있는 처지이고, 뭔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그렁저렁 앞으로 예상되는 나의 삶을 더욱 채찍질하여 긴장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무척이나 힘들어지고 하릴없는 여느 노인과 다를 바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초라하고 불쌍한 처지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엔 백호(경인년생)로 태어난 내가 무척 억울하다고 느낀다. 백호의 용맹스런 모습을 생의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 활발한 움직임의 끈을 더욱 강하게 움켜 잡는다.

백호의 등에 올라 허공을 가르며 나는 꿈을 꾼다. 무척이나 빠르게 계곡 산야를 휘젓고 쏜살같이 나는 꿈을 꾼다.

옛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에서는 과거 2~30여 년 전 팔팔하던 시절 해외나 국내 현장에서의 무용담을 한 가닥씩 뽑아내다 보면 으쓱해지고 자랑스럽기도 한 자신을 본다.

학교 동창들을 만나서는 누구 할 것 없이 선생님들의 별칭이나 학창시절 풋내기들의 영웅담으로 가는 시간을 잠시 잊기도 한다.

이런 저런 만남에서 실컷 웃음꽃을 피우고 떠들다 보면 할아버지라는 것을 잊고 예전 그 시절에서의 나를 돌아보면서 위안을 삼는다. 어쩌면 그런 행동들이 젊은 세대에 대한 은연한 항거로도 보이지만 아직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를 갖는다. 예전에 못 배웠던 것들을 찾아본다.

외국어도 열심히 복습한다. 꿈에서 외국어로 얘기할 정도로 푹 빠져본다. 막 태어난 아기로 시작하여 30대 젊음을 생각하면서 컴퓨터 자판 치는 것도 연습하고 휴대전화 문자도 유독 많이 날린다. 그만큼 신세대 젊은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감히 할아버지이기를 거부하고 싶다.

살아온 것만큼 살 수는 없을 테지만 그것의 반만큼이라도 사는 동안에 할아버지가 아닌 조금 나이 많은 오빠요 형이고 싶다. 나는 아주 특별히 경인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휴대폰 문자를 날리고 내 온라인 카페에 댓글을 단다. '경인년생 화이팅!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라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 - 이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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