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ㆍ진정 아는 사람은 떠들지 않고, 떠드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인터뷰 요청에 차석용(56) LG생활건강 사장의 첫 반응은 노자가 쓴 <도덕경> 의 한 구절로 시작됐다. 최근 홍콩의 금융월간지 '아시아 머니'에서 '2009 한국 최고경영자'로 뽑히는 등 주목 받고 있는 CEO지만 그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도덕경>
"기업의 성과는 모든 구성원이 쏟은 노력의 결과물인데 어느 한 개인이 잘해서 잘 되는 것처럼 알려지는 게 아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회사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2005년 LG생활건강 부임 후 그가 거둔 성과를 들여다보면 세간의 이목이 유독 그에게 집중되는 게 무리는 아니다. 한국P&G와 해태제과 사장 등을 지내며 다양한 인수ㆍ합병(M&A) 경험을 쌓은 그는 LG생활건강에서도 성공적으로 M&A를 주도하며 경영실적에 크게 기여했다.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한 뒤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올해는 다농그룹과 손잡고 발효유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특히 최근에는 화장품 3위 업체인 더페이스샵을 전격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만년 2위' LG생활건강이 더페이스샵의 막강한 유통망을 보유함으로써 화장품 업계 1위인 아모레퍼시픽을 바짝 추격하게 됐다는 평가다.
"'맹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데 갖지 못한 것, 또는 회사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노베이션 능력을 인수한다'는 기준으로 M&A에 접근한다"는 차 사장 역시 유통 채널로서 더페이스샵의 강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가두점 시장 형성기에 사업을 시작한 더페이스샵은 경쟁력 있는 위치에 많은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자체적으로 더페이스샵 수준의 경쟁력 있는 매장 위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M&A를 추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3,500억원의 인수 대금이 높다는 지적도 있지만 차 사장은 "인수 가격은 적정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더페이스샵 인수로 LG생활건강의 부채비율이 약 140% 정도까지 오르겠지만 1년 후에는 다시 10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며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의 R&D능력과 생산ㆍ물류의 전문성에 더페이스샵이 확보한 좋은 매장 위치가 더해지면 지금보다 훨씬 개선된 사업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낙관했다.
생활용품과 화장품, 음료 부문의 고른 매출을 원하는 차 사장에게 M&A는 앞으로도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매력적인 수단이다. 그는 "M&A는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LG생활건강은 1년에 약 1,500~2,000억 정도의 현금을 창출하기 때문에 더페이스샵 정도의 규모라면 2년에 한번 정도 M&A할 수 있는 재무상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을 지망하다 미국 P&G 본사 최초의 한국인 직원으로 입사하며 32세에 뒤늦게 사회 생활을 시작한 차 사장은 성공 비결로 "거북이처럼 꾸준하게 노력하는 '계속하는 힘'"을 꼽았다.
자연히 그의 인재관도 "계속 한 방향으로 쉬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멀리 갈 수 있다"는 평소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제가 취임한 후 LG생활건강의 가장 큰 변화는 상명하달 문화에서 벗어나 전 구성원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생각이 자라고 안목이 높아지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또 그런 인재를 키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졸이며 올 한 해를 보냈다"는 차 사장은 "'잔잔한 파도는 유능한 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을 기억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내년 각오를 밝혔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다짐만큼 신년 초 직원들에게 당부할 한 마디도 남다르다. "내년 시무식에서는 휴브리스(Hubrisㆍ역사학자 토인비가 사용한 해석학 용어)에 대해 강조하려 합니다. 과거의 성공에 취해 너무 자신만만하다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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