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고 쉼호흡을 한 뒤 주방용 장갑으로 큰애 방문을 연다. 큰애에게 발열 증상이 나타난 건 목요일 아침, 그러니까 모처럼 온가족이 모여 재미있게 보내야지 생각하던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다. 병원에서는 타미플루를 처방했다. 결과는 이틀이면 나오지만 성탄절 연휴 때문인지 월요일에나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처방된 타미플루 5일치를 거의 다 먹을 무렵에나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큰애와 작은애를 중심으로 가족이 흩어졌다. 그날 오전부터 큰애와 나는 집에 남겨졌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전화를 건 이들은 걱정 끝에 왜 하필 이런 날 걸렸느냐고 토를 달았다. 성탄절 케이크도 그것만 보면 엉덩이춤을 추는 작은애 편으로 보내지고, 케이크 앞에서 방방 뛰고 있는 작은애 사진만 메시지로 도착했다. 집에서도 우리는 제 방에 틀어박혔다.
아이와 밥을 같이 먹을 수도 없고 수다를 떨 수도 없다. 식사 때면 쟁반에 음식을 덜어 담아 방으로 들여다준다. 자다 깬 아이는 마스크를 쓴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이렇게 세 끼 식단에 신경을 쓰기는 처음 이유식을 하던 때 이후로 오랜만인 듯하다. 중간중간 병세도 살필 겸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약의 부작용도 살필 겸 방문을 열어본다. 어두컴컴한 방 저 끝에서 큰애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메리 크리스마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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