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서 야식집을 하는 정모(52)씨는 지난달 26일 밤 11시께 칼국수 주문을 받은 뒤 오토바이를 타고 5분 거리인 아파트 단지로 서둘러 배달을 나갔다. 하지만 음식을 주문한 8층 집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묵묵부답이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 1층에 내려와 보니 오토바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영악하게도 가짜 주문 전화를 걸어 오토바이를 훔친 이들은 16세 A군과 B군. 이들은 훔친 오토바이를 일주일간 타고 다니다 인터넷을 통해 10만원에 팔았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15일 특수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들은 이미 두 차례 오토바이 절도 경력이 있는 '프로'였다.
소형 오토바이가 부실한 잠금장치와 허술한 등록제로 인해 10대 절도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비행 청소년 대부분이 오토바이 절도로 시작해 범죄의 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오토바이 절도는 학교 폭력과 함께 10대 범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대검찰청의 '2009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입건된 19세 이하 소년범은 13만 4,992명으로 2007년(8만8,104명)에 비해 1.5배 늘었는데, 혐의는 폭력(3만7,083명)과 절도(3만3,073명)가 가장 많았다.
특히 10대들이 훔친 물품 상당수가 오토바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005년 조사 당시 10대 절도 범죄 피해물품 중 오토바이가 60%를 차지했는데, 이후 더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 시내 주요 경찰서 14곳에 확인한 결과, 올해 적발된 10대 오토바이 절도 범죄 건수는 총369건에 달했다. 최근 6일 동안 무려 10대의 오토바이를 훔친 13세 소년도 있었고, 지난달에는 5개월 동안 하루 한 대 꼴로 150여대의 오토바이를 신들린 듯 훔친 10대 4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쉽게 훔치는 것은 우선 소형 오토바이 잠금장치가 매우 허술한 탓이 크다. 최근 국내에 많이 들어오는 중국산 오토바이의 경우 키박스가 정교하지 못해 가짜 키로도 쉽게 시동이 걸린다.
오토바이 절도 경험이 있다는 C(15)군은 "다른 오토바이 키를 깎아서 만든 '딸키'로 키박스에 넣어 몇 번 돌리면 금방 시동이 걸린다"고 말했다.
허술한 오토바이 등록 제도도 10대의 절도 행각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오토바이 중 배기량 50cc 이하가 25% 정도인 50만대로 추정되지만, 50cc 이하는 등록이 필요 없다.
따라서 오토바이를 도난 당한 경우 소유자 확인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절도범들은 훔친 오토바이를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손쉽게 팔고, 장물 여부를 가리기 힘든 탓에 경찰도 절도 혐의를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모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오토바이 관리는 운전면허만 있고 등록제도는 없는 기형적 구조"라며 "이런 상황 때문에 보험사들도 오토바이 보험을 잘 들어주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10대들이 주로 오토바이 절도를 통해 범죄의 길에 들어선다는 점이다. 재미삼아 남의 오토바이에 손을 댔던 '바늘 도둑'이 점점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며 '소 도둑'으로 성장하는 것. 경기지역 한 소년원 관계자는 "입소생들이 비행에 빠져든 계기가 오토바이 절도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소년범죄 전문 정수인 변호사도 "청소년의 최초 비행은 오토바이 단순 절도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후 특수절도, 날치기, 보험사기 등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오토바이 의무등록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내년 중 결과가 나오면 등록 범위를 결정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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