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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와 불기소 사이… 檢 '남용의 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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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와 불기소 사이… 檢 '남용의 劍'

입력
2009.12.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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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역 중인 한 피고인이 1년 사이 무려 10가지 죄목으로 7차례나 기소됐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인정한 뇌물범죄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명동의 유명 사채업자 L(49)씨는 빌린 돈으로 회사를 인수한 뒤 주가를 조작하고 회삿돈을 횡령하는 수법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잘 알려져 증권업계에선 요주의 인물이었다. 이른바 인수ㆍ합병(M&A) 전문가인 그는 코스닥 상장업체인 M사를 인수한 뒤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2007년 12월 구속돼 1년6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형기를 10개월 가량 남겨 놓은 지난해 7월 검찰은 L씨를 사기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 2개월 뒤 L씨에게는 애초 사건과 무관한 도박장 개장, 관광진흥법위반, 공동상해 혐의 등 3건의 죄가 추가됐다.

도박장을 열어 상습도박을 하고, 사기를 당한 지인을 위해 폭력배를 소개해줬다는 것이 추가된 혐의였다. 다시 일주일 뒤, 이번에는 2005년에 M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가 L씨에게 추가됐다. 2개월 사이 세 번에 걸친 기소로 그의 죄목은 5가지로 늘어났다.

검찰의 릴레이 기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검찰은 L씨의 첫 사건 만기 출소일인 올 6월을 전후해 다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5월 말에는 회삿돈 4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주 뒤엔 다른 건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7월 초에도 횡령과 배임 혐의로, 8월 초에는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무더기 추가 기소했다. 지난해 7월부터 따지면 L씨는 감옥에 있는 동안 7차례에 걸쳐 10가지 죄목으로 연거푸 기소된 것이다.

검찰은 범죄 혐의가 새롭게 포착될 경우 추가 기소는 당연한 것이라는 원론적인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 시점이 공교롭게 출소 직전이고, 하나의 이어진 범행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여러 건으로 나눠 기소한 대목은 명쾌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가 기소 배경의 의혹은 재판 과정에서 제기됐다.

L씨의 변호인이 "현 정권 장관급 인사 A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진술을 하지 않는다고 추가 기소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확보하고자 L씨를 1년 넘게 별건(別件) 기소로 압박했다는 주장이었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상대적으로 약점이 많은 사채업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수사기관이 추가 기소로 계속 옥살이를 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L씨의 사건들을 병합해 재판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는 별건 기소된 혐의 중 5개를 무죄로 보고, 징역 4년6월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횡령액이 47억여원으로 거액이고 죄질이 불량하다"면서도 도박장 개장, 관광진흥법위반, 공동상해, 배임, 증권거래법위반 혐의는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렇듯 L씨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검찰은 지난 8월말 돌연 뇌물사건(본보 16일자 10면)에서는 그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L씨는 M사가 정부 산하 연구소가 주관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이 연구소 연구원에게 4,00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기소권 남용이 이번에는 불기소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검찰은 "이미 다른 죄로 오랜 기간 수감 중이라 기소하지 않은 것 같다"며 "A씨 의혹 사건의 자백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이 기소하기 싫어 불기소했다면 공소권의 자의적 적용을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 정권 시절 C사의 주가조작 사건에 A씨가 연루됐다는 첩보와 관련해 진술을 압박했다는 L씨 측 주장에 대해 검찰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인사는 "A씨와 관련해 현재 진행되는 것은 없으며, 들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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