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성탄절 휴일에도 새해 예산안의 연내 합의처리를 위해 협상을 벌였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주말 이틀을 포함해 엿새 안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헌정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라는 비상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시한폭탄을 안은 채 급박한 상황으로 치닫는 여야의 아집과 무책임이 개탄스럽다.
준예산은 12월31일까지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전년도에 준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만 쓸 수 있는 제도다. 단기간에 그치면 모를까, 장기화할 경우 민생을 비롯한 국정 전반에 심각한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60년 내각제 개헌 때 도입한 이래 실제 준예산 편성에 이른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이번에도 설마 여야가 막장까지 갈까 싶은 것도 양쪽 모두 국가적 혼란은 피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판세가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준예산 집행 준비를 내각에 지시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준예산 편성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국회 협상이 진행중인 마당에 국정 최고책임자가 여야에 간곡하게 연내 처리를 호소하는 대신 배수진을 치고 압박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국정 소신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야당의 요구를 수렴하고 물러설 명분을 마련해주는 정치력이 아쉽다.
시한이 촉박하지만 파국을 막을 기회는 남아있다. 29~31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여야 모두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타협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정부여당의 정책 주도권을 통째 부정하려는 민주당의 태도는 옳지 않다. 한나라당도 야당의 이유 있는 반대와 문제 제기는 적극적으로 수렴해 반영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예산 가운데 수자원공사에 지원할 이자 보전액 부분이나 준설과 보 설치 예산도 집행시기 등에 융통성을 발휘하면 절충이 가능하다고 본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외고집과 경직성을 버리면 된다.
전체 새해 예산의 1.2%에 불과한 4대강 예산에 발목이 잡혀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초래하는 것은 여야 모두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예산안 단독처리를 강행한다면 격렬한 충돌과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다. 여야는 연말을 한층 스산하게 만든 예산안 다툼을 국민이 노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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