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 스몰 럭셔리, 리세셔니스타, 아웃도어…. 패션 업계의 2009년은 불황이 키워드가 된 한 해였다. 수년째 맹위를 떨치던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가 글로벌 경제 위기로 고개를 떨군 사이 패스트 패션이 트렌드 리더로 급부상했다.
제일모직 LG패션 등 패션 대기업은 공격적 인수ㆍ합병(M & A)을 통해 수입 브랜드 시장을 장악했으며 여성들은 높이 솟은 파워숄더와 대담한 레깅스를 통해 위기의 시대를 위안했다.
2009년은 공포로 시작했으되 한국 패션 산업의 튼튼한 체질과 가능성을 엿보인 한 해이기도 했다. 한국패션협회 및 패션 업계 관계자들의 조언을 토대로 2009년 패션 업계 7대 뉴스를 선정했다.
1. 뽕은 자존심이다_ 파워숄더룩 열풍
패션 잡지계의 이면을 다룬 드라마를 통해 배우 김혜수가 유행시킨 것은 '엣지 있게' 한 마디가 아니다. 패드를 넣어 과장되게 솟은 파워숄더(power shoulder)룩도 있다. 호황기였던 1980년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과 자긍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빅숄더(big shoulder)가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 부활한 것에 대해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고픈 현실도피적 욕구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덕분에 컬렉션에서 파워숄더 재킷을 선보였던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발망의 인기가 치솟았고 윤은혜 신민아 하지원 송혜교 등 톱스타들의 파워숄더 재킷 차림이 연일 인터넷을 달궜다. 또 다양한 내셔널 브랜드에서 재킷과 블라우스, 셔츠류에 파워숄더를 도입해 사랑받았다.
2. 글로벌 SPA브랜드, '내가 곧 패션이다'
불황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글로벌 전략을 공세에서 수성으로 대폭 수정한 반면, 국내 진입한 글로벌 SPA 브랜드들은 오히려 공격 행보를 이어가며 트렌드 리더로 급성장했다. 유니클로 자라 망고 갭 등은 빠른 상품 회전율과 저렴한 가격대로 가벼워진 지갑을 집중 공략하며 전국 가두상권까지 점령했다.
여기에 11월엔 이랜드그룹이 국내 첫 글로벌 SPA브랜드 SPAO를 명동 유니클로 매장 바로 옆에 열었고 내년 3월엔 자라의 최대 맞수인 H&M이 서울 명동 눈스퀘어에 1호점을 열며 직진출, 시장 쟁탈전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3. 제일모직 LG패션, '수입 올인' 거침없는 식욕
경제 위기로 인한 환율 불안은 중소 수입업자들에겐 치명타였지만 자본력 있는 대기업에는 수입시장을 장악하는 호기였다. 제일모직은 올해만 토리버치 니나리치 세븐진 망고 스티브매든 프링글, 화장품브랜드 산타마리아노벨라의 7개 브랜드 국내 수입판권을 확보했다.
LG패션은 바네사브루노 질스튜어트 질바이스튜어트 조셉 이자벨마랑 레오나드 6개 수입 여성복 브랜드를 인수했다. 이중 레오나드를 제외하면 최근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수입 컨템퍼러리 조닝의 여성복들이라 아예 시장을 싹쓸이했다는 평까지 받았다. 이로써 그간 비교적 중소 업체들이 중심이 됐던 수입 브랜드 시장도 제일모직과 LG패션, SK네트웍스 등 대기업군으로 재편돼 국내 패션 시장의 대기업 편중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4. 리세셔니스타, 스몰 럭셔리 등장
2009년의 트렌드 키워드로 리세셔니스타와 스몰 럭셔리가 떴다. 리세셔니스타(recessionista) 는 경기 침체(recession)와 패셔니스타(fashionista)의 합성어로 합리적인 예산으로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게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최신 유행 상품은 가격이 싼 글로벌 SPA 브랜드에서 해결하는 반면, 불황기를 고품질 고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 구매하는 이들이다.
유명 수입 브랜드군에서 재고소진 및 현금 확보를 위해 올해 특히 많이 실시한 패밀리세일이 이들의 주요 쇼핑처. 한편 스몰 럭셔리(small luxury)는 가격 부담이 작은 사치품을 구입해 만족을 극대화하는 가치형 소비 현상. 일례로 화장품 브랜드 헤라의 립스틱은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2008년 대비 매출이 10.6%나 성장해 작은 것에서 대리만족을 얻는 소비 행태를 엿보게 했다.
5. 아웃도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비교적 돈이 덜 드는 등산 갬핑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전성기를 누렸다. 노스페이스는 업계 최초로 4,000억원 매출을 돌파했고 코오롱스포츠도 30% 가까운 성장을 보이며 3,000억원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올해 아웃도어 시장의 특징은 초경량, 친환경, 캠핑 제품의 대거 등장이다. 아웃도어는 물론, 일상의 캐주얼 웨어로 겸용할 수 있는 제품들도 큰 인기를 얻었다.
6. 패션코리아 부흥, 관이 나섰다
에스콰이아 톰보이 쌈지 등 패션 1세대 브랜드들이 매각되는 등 패션 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편에서는 패션 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발 크게 다가선 해 이기도 했다. 지식경제부가 패션 산업의 글로벌화를 겨냥한 '2009 글로벌 브랜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 痼?패션 업계의 의지를 북돋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이션패션 한섬 위비스 동광인터내셔널 쏠리드옴므 등 12개 브랜드가 글로벌 리딩 브랜드로 선정돼 지경부의 집중 지원을 받게 됐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집중 홍보를 위해 내년 뉴욕에서 개최할 한국패션쇼룸사업 수혜자로 정구호 정욱준 박춘무 등 7명의 디자이너(팀)를 선정, 해외 진출의 초석을 놓았다.
7. 아이돌 패션, 캐주얼 시장 점령
스타 파워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들을 겨냥한 패션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걸그룹의 영향으로 화려한 스키니진과 마린 룩, '짐승돌'(짐승 아이돌)로 불리는 2NE1의 형광색 레깅스 패션,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탑 슈즈와 후드티, 알록달록한 색상의 다운 재킷 등이 10대들의 국민복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션 업체들의 이들을 이용한 스타 마케팅도 뜨거웠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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