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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홈리스의 힘겨운 겨울나기/ <하> 시도되는 실험들… 대안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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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홈리스의 힘겨운 겨울나기/ <하> 시도되는 실험들… 대안은 없나

입력
2009.12.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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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내일 열어주자" 민간단체 고군분투… 정부 손길 절실

한때 거리를 전전하며 일용직 근로로 끼니를 때웠던 워킹 홈리스(working homeless) 김모(28)씨는 요즘 오전 9시만 되면 서울 용산 전자상가 근처 자전거수리센터로 출근한다. 그는 1년 4개월 전부터 노숙인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가 운영하는 자전거 재활용사업단에 참여해 자전거 수리기술을 익혔다. 그가 폐자전거를 수거해 고친 자전거는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들에게 기부된다.

비록 월급은 서울시가 지원하는 40만원 정도여서 쪽방 월세를 내기도 벅차지만, 그는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내일'을 되찾았다고 했다. 김씨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기면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단 동료 8명과 함께 자전거 재활용사업단을 다시서기센터에서 독립시켜 내년부터 본격적인 수익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김씨에게 재기의 발판이 된 자전거 재활용사업처럼 주거ㆍ일자리ㆍ건강ㆍ심리 등 다각도로 워킹 홈리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시도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잠자리 제공이나 급식 지원 등 응급대처 수준에 머무는 정부 정책을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재정과 지속성 면에서 한계가 있어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거주 부문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증가한 홈리스에 대한 정부 주거대책은 집단합숙 형태의 쉼터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쉼터 입소자 일부를 대상으로 '자활의 집'이라는 전세형태 주택을 제공하기도 했으나 규모가 턱없이 적었고, 2~3명 단위로만 공급했기 때문에 주로 홀로 생활하는 홈리스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책 부재 속에서 10여개 민간단체는 2006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홈리스에게 무보증 월세방을 구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2, 3개월치 주거비까지 제공해 초기 정착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줬다. 성과는 놀라웠다. 올해 말 현재 연 평균 500여명에 달하는 홈리스가 이 사업을 통해 무보증 월세를 얻었고 주거유지율은 80%를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문제가 사업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단체측은 이 사업을 정부가 이어받아 운영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 일자리 부문

영리기업이 아닌 민간단체가 홈리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홈리스 귀농'이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도시를 떠나야 하고 농지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이를 추진하는 단체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되는 대안은 사회적 기업 창업. 홈리스 출신 김동남(49) 대표가 만든 두부회사 '짜로사랑'(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한때 막노동을 하지 않을 땐 술에 절어 살았던 김씨는 2004년 홈리스 출신 2명과 함께 우리 농산물만 사용하는 두부 제조공장을 차렸다. 현재 이 회사는 직원 5명(홈리스 출신)에 올해만 3억원이 넘는 매출을 낸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홈리스에 대한 자금 지원은 한계가 있다"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고 말했다.

● 건강 부문

워킹 홈리스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소는 건강이다. 수년간 열악한 주거환경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 결과 '골병'에 걸린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이 의료지원을 받으려면 쉼터에 입소해 의사들의 자원봉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쉼터에 가지 않고 만화방이나 PC방 등에 거주하는 워킹 홈리스들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999년 설립된 봉사단체 '굿피플'은 월 1~2회 쪽방 등 비주택 거주지를 직접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각종 의료장치를 갖춘 특수차량을 운행해 기초진료 뿐만 아니라 침술, 초음파, 치과 등의 치료까지 제공하고 있다.

● 심리 부문

심리적 불안과 자존감 결핍도 워킹 홈리스의 재기를 막는 걸림돌이다. 최근 홈리스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강의들도 이런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 노숙인다시서기센터는 2005년부터 매년 20~25명을 받아 1년간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는데, 철학, 예술사, 역사, 문학, 작문 등 5개 과목을 가르치면서 미술관 박물관 등 현장학습도 나간다. 이정규 복지사는 "입학 경쟁률이 4대1에 이를 정도로 반응도 좋고, 서울시도 이를 벤치마킹 해 작년부터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간단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재정 문제 등 어려움이 많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실직노숙인대책종교시민단체협픽맛?정은일 사무국장은 "홈리스 관련 사업이 2006년부터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면서 관련 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끊긴 경우가 많고, 정작 지방에서는 이벤트 차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홈리스 지원 사업을 중앙정부로 다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명기자

김현우기자

남보라기자

■ 인권위 정책토론회…"비주택 거주민 실태조사·맞춤정책 필요" 목소리

비주택 시설 거주민의 재활과 자립을 위해 정부가 우선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한 뒤에 맞춤형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2일 서울 태평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비주택거주민 인권현황 및 개선방안 정책토론회'에서는 비주택 거주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비주택 거주민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며 "이들에 대한 주거실태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주택 시설 거주민은 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주택총조사로도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주택법 제5조에 따라 2년마다 실시되는 특수조사를 활용해 정부가 우선 지원해야 할 집단의 규모와 현황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들에 대한 주거 대책으로"쪽방이나 비닐하우스 거주민에게만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 등의 주거지원사업을 다른 유형의 비주택 거주민에게도 확대해야 한다"며 "또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확대하고 임대료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강미나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주택 거주민이 지금 보다 더 열악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지원이 시급하며, 장기적으로는 저렴한 주택공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시웅 전국홈리스연대 사무처장은 "기초생활 보호 대상을 확대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주택 거주민 관련 사업을 확대할 경우 인근 지역의 홈리스까지 모여들 것을 우려해 아예 사업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최신애 보건복지가족부 사회통합전략과 전문위원은 "예산 부족으로 그 동안 실태조사를 못했는데, 관계부처에 건의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토해양부 주택과장은 "고시원ㆍ여인숙 등 비주택 거주민에게도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이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주거복지재단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복지 선진국의 정책사례도 소개됐다. 영국은 1997년 홈리스 문제를 전담하는 팀을 수상 직속의 '사회적 배제 분과(Social Exclusion Unit)'내에 두어 홈리스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독일의 경우 노숙인들이 최저 생계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일정기간 동안 주택 임차료와 건강보험료를 대신 내주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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