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딧, 무담보 소액대출을 담당할 미소금융재단이 속속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소금융이 주목 받는 것은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데다 4.5%에 불과한 금리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자신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 해이' 예방해야
이러한 미소금융의 자랑거리들이 제대로 빛을 내려면 정밀한 유인체계가 필요하다. 모든 경제활동에서 유인체계가 잘 설계돼야 하는데, 금융의 경우엔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도 유인체계 문제를 잘 해결한 것이 성공의 근간이 됐다.
소액대출은 일일이 심사하고 모니터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그라민 은행은 그룹대출 방식을 통해 차입자 그룹의 자체 심사(peer selection)와 동료 모니터링(peer monitoring)을 유도,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라민 은행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방글라데시와 달리 이미 산업화를 거쳐 서구식 개인주의가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를 거의 대체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상호금융 방식인 '계' 제도가 사라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라민 은행의 동료 모니터링 방식이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기존 마이크로크레딧 기관들은 자발적 참여자들의 노력에 많이 의존해 왔다.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이 저신용자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면서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연체율을 기록한 것은 많은 자발적 참여자들의 땀에 기초한 것이다.
이런 훌륭한 참여자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매우 좋은 조건의 대출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선의를 가진 자발적 참여자와 함께 이들을 감독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그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감독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으나 미소금융은 규모가 큰 만큼 감독 문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미소금융은 대출 조건이 좋기 때문에 감독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4.5% 금리는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에도 적용 받을 수 없는 좋은 조건이다. 따라서 대출 취급인이 대출을 약속하면서 뇌물을 요구하더라도 차입자가 웬만해서는 거절하기 어렵다. 대출 취급인의 선의를 믿을 수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사람의 선의에 기초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사례를 너무 많이 봐 왔다.
미소금융은 돈을 제 때 갚지 않아도 연체기록이 남지 않아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것도 문제다. 미소금융재단은 신용정보의 집중 의무를 갖지 않기 때문에 미소금융의 연체정보를 금융기관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마당에 당장 연체가 발생할 리 없으며 연체기록 공유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차입자의 현재 행위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연체기록이 남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연체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밀한 유인체계 갖추길
이런 문제점들을 감안할 때 미소금융의 출범을 보면서 미소에 앞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미소금융의 출범을 놓고 내년 지방선거 등과 관련한 '정치적 의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루머들이 나도는 것도 현재의 미소금융 제도가 누구나 알 수 있는 유인체계 상의 허점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유인체계 문제의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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