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한통운 사장 곽영욱(구속기소)씨의 공기업 사장 인사 로비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이름이 잇따라 언급되면서 정 대표 조사가 불가피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검찰의 결정이 주목된다.
2006년 12월20일 총리공관 오찬장에 정 대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을 때만 해도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는 여론은 적었다. 그러나 한명숙 전 국무총리 공소장을 통해 오찬 한달 전인 2006년 11월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고위 관계자와 과장이 곽씨에게 "석탄공사 사장직에 지원하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 대표는 당시 산자부 장관이었다.
급기야 산자부 고위 관계자가 이원걸 당시 2차관이었고, 그가 검찰에서 "정 대표의 지시에 따라 곽씨에게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 차관에게 지시한 것이 사실인지,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등에 대한 의문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검찰이 경위 파악을 위해서라도 정 대표를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오찬장에 동석했던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한 바 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제1야당 대표를 명백한 범죄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조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게 신중론의 근거다. 실제로 각종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가 돈을 받았다는 등의 범죄 정황은 드러난 것이 없다. 현 단계에서 정 대표를 조사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은 곽씨가 돈을 줬다고 진술한 참여정부 실세 J, K씨와 유임 로비설이 나돌고 있는 현 정권 인사에 대한 수사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한 전 총리 기소만으로 '판'을 접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보였다. 법조계에서는 상황이 이런 만큼 검찰이 정 대표 조사라는 강수를 둘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편, 검찰이 22일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공소장 공개를 꺼리는 듯한 행보를 보여 눈총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검찰은 하루치 공소장들을 일과 후 법원에 일괄 접수시키고, 기자들은 공소장이 담당 재판부에 전달되기 전인 이튿날 오전 일찍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전 총리의 공소장은 전날 오후 5시에 법원에 접수돼 곧바로 해당 재판부로 넘어갔다. 기자들이 공소장 내용을 확인할 기회를 없앤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소장은 23일 오전 10시쯤에 공개됐지만 검찰이 공소장 공개를 의도적으로 막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특히 공소장은 검찰에 의해 확정된 범죄사실로, 구속영장과 달리 피의사실 공표 혐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검찰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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