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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풍경, 2009] <9·끝> 연재를 마치며 -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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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풍경, 2009] <9·끝> 연재를 마치며 - 좌담

입력
2009.12.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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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출판은 한 나라 문화 수준의 중요한 척도다. 한국일보는 '한국출판문화상' 50년 기념 기획 '책의 풍경, 2009'를 통해 우리 출판과 독서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연재를 마치면서 김학원 휴머니스트 출판사 대표,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등 3명의 좌담을 마련, 우리 출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 '책의 풍경, 2009'는 한국 출판의 현실을 살펴보기 위한 기획이었습니다. 한국은 척박한 조건에서도 세계 10대 출판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문제점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에 이 정도 성과를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 출판의 현재 모습을 먼저 이야기해보지요.

▦김학원= 출판만 놓고 보면 해방 이후 3세대가 흘렀습니다. 그 기간을 거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세대의 독자층이 형성됐고 모든 세대가 볼 수 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물론 60대 이상 노년층의 독서와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은 여전히 취약합니다만 나머지는 세대별 독자층과 그들을 위한 도서 공급이 탄탄합니다. 지금은 임산부가 뱃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정도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책과 접하는 것이지요. 출판 장르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소설, 인문서는 물론 학습서, 경제경영서, 실용서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담는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서적도 원어에서 한글로 바로 번역됩니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바꾼 것이 많았습니다.

▦백원근= 인터넷 서점, 검색서비스, 전자책 등의 예에서 보듯 출판계에도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 매체환경의 다변화 등도 최근 출판계의 큰 변화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출판 패러다임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한국 출판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외국의 전문가들도 한국 출판을 높이 평가합니다. 올해로 출범 50년이 된 '한국출판문화상'이 거기에 일정 정도를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표정훈= 그렇습니다. 한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밝히고 지식과 정보를 교환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한국출판문화상'은 한글로 이뤄진 한국 출판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학원= 수상자에게는 격려와 자랑이 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극이 되는 중요한 상입니다.

▦백원근= '한국출판문화상'은 출판 문화가 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시절에 시작해 50년을 이어왔으니 출판계의 큰 자랑입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개 인문서가 상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실용서 등도 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한국출판문화상'은 앞으로도 출판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책의 축제'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한국의 독서 흐름 혹은 독서 환경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요?

▦표정훈= 요즘 많은 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을 냅니다만, 젊은 독자는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그 무거운 이름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한국소설, 외국소설 구분하지 않고 그냥 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국경이 없어진 것이지요.

▦김학원= 40대의 독서 패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 여성들은 비로소 자기 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가령 그림을 살 돈은 없어도 감상은 할 수 있게 됐는데 이에 맞춰 미술, 예술사 등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남성은 경쟁적인 삶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고 인생의 근본을 슬슬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인문학에 관심을 나타내고 그런 분야의 책을 찾고 있습니다.

▦백원근= 독서에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은 더 많이 읽고, 읽지 않는 사람은 갈수록 읽지 않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기도 합니다. 영어책 읽기도 활발해졌습니다. 영어 전문서점이 있고 영어전문도서관도 전국에 20여 군데나 됩니다.

▦사회= 표정훈씨가 말한 것처럼 책에서는 국경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학원= 그렇습니다. 우리 책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글로벌화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선 국내 저작물을 외국 언어로 제대로 옮기는 게 중요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황석영씨의 소설 <오래된 정원> 의 현지 출판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김기덕, 박찬욱씨 등 영화감독의 작품전이 거기서 열렸다면 꽤나 주목을 받았을 테지만 이 행사는 썰렁했습니다. 그때 한 권의 우리 책이 세계와 소통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백원근= 우리나라는 종 수를 기준으로 할 때 2008년 말 현재 번역서의 비중이 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윱求?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역량 있는 작가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나올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영국의 독서교육> 이라는 책을 보면 영국은 어딜 가나 도서관이 있고 가정, 학교가 도서관과 연결돼 있습니다. 영국에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한국은 입시위주 교육 때문에 그런 작가가 나오기 힘듭니다.

▦표정훈=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합니다. 특히 작가는 시대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편집자와의 파트너십 등도 중요하지요.

▦김학원=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 이세욱씨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세욱씨가 없었다면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이렇게 체계적으로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좋은 책을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번역하려면 원서의 분위기와 현지의 정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번역가를 출판사가 발굴해야 합니다.

▦백원근= 하지만 출판의 교역 역시 시장 원리에 따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수요가 있으면 저절로 번역이 되는 것이지요. 출판사의 의지보다는 수입국의 시장상황이 중요합니다.

▦김학원= 지금 중국에는 한국 책 번역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20~30명 정도 됩니다. 한국 출판사가 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합니다. 현지 독자의 감수성을 감안하되 저자의 문체, 원저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는 등 책의 원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는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회= 해외 진출 말고 또 어떤 숙제가 있습니까.

▦김학원= 책이 많아도 읽을 책이 부족하다고 독자들은 말합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떤 책을 어떻게 낼지 고민하고 그에 맞춰 체계적으로 출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체계적인 출판 목록의 개발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표정훈= 출판사가 낱낱의 책을 생각할 뿐 1년 이상의 전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어떤 책을 내겠다는 장기적 밑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해외 진출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김학원= 독자의 반응을 제대로 읽는 것도 숙제입니다. 이제 독자는 책을 수동적으로 읽지 않습니다.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저자와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전합니다. 제가 일하는 휴머니스트는 <교수대 위의 까치> 라는 책을 낸 것을 계기로 얼마 전 저자 진중권씨와 함께 독자 강좌를 진행했습니다. 37차례 강연을 개최했는데 독자가 1만6,000명이나 몰렸습니다. 그들은 책에 더 이상 조미료를 치지 말라고 출판사에 요구합니다. 자기네가 다 알아서 읽고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백원근= '텍스트 프로슈머'(text prosumer)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들은 블로그 등에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왕성하게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다가는 출판사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계적인 생산, 유통은 출판과 무관한 기업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겁니다. 출판사는 인쇄공장이 아니며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표정훈= 올해 '개념'과 관련한 책이 많이 출간됐는데 단순한 개념 설명이 아니라 개념에 대한 비평을 한 것이 특징입니다. 인터넷에 개념 관련 설명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책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출판은 이런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백원근= '스크린셀러'라고도 하는데요, 책이 영상매체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고 있습니다. 책은 이제 다른 매체와 경쟁하고 공존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환경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독서진흥계획을 내놓고 독서문화진흥법의 연도별 시행계획도 내년부터 본격 추진되는 등 조금씩 좋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표정훈= 한국 출판인들은 실력도 좋고 일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출판의 미래가 밝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어린이책 발행은 지금 절정에 달해 있지만 어린이 인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출판 시장은 2000년대 들어 형성됐지만 입시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청소년 독서와 출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학원= 향후 10년 정도는 50대가 출판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들은 일도 할만큼 했고 더 이상의 큰 성공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건강, 자연친화적 삶 등에 관심을 갖는데 출판도 그들의 요구에 호응할 것입니다.

▦표정훈=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도 출판에서는 주목의 대상입니다. 이들은 인구가 많은데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구매력도 있습니다.

▦백원근= 출판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고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매체 환경이 바뀌고 디지털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책 읽는 사람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전문 콘텐츠 기업으로 뿌리를 내리느냐 못 내리느냐에 출판사의 사활이 달려 있습니다.

▦김학원= 지금은 출판과 관련한 모든 업무가 디지털로 처리됩니다. 그러나 디지털화는 저작권 분쟁을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나온 출판물 가운데 2차 저작권에 대해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은 게 많기 때문이지요. 이 경우 독서 환경, 출판 환경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정리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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