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가 누더기가 됐다. '세제는 단순 명료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사라졌고, '한시 적용' '예외 적용'식으로 온통 땜질이 됐다.
감세도 해야겠고, 재정악화도 막아야겠고, 서민정서도 달래야겠고…. 이처럼 '다목적'세제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여당, 야당이 주고 받기 식으로 세법에 손질을 가하다 보니 누더기 법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리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부안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해도 이번에는 전례가 드물 정도인데, 앞으로 두고두고 논쟁의 불씨만 잔뜩 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법인세 및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 인하를 2년간 유예하는 등의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관련기사 18면
진통이 컸던 만큼 당초 정부가 제출한 세제개편안 중 원안대로 유지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정부안이 아예 폐기된 것도 아니고, '한시''유예' '예외' 등의 단서가 수없이 달렸다.
'부자 감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법인세 및 소득세 추가 인하가 대표적. 재정위는 최고구간에 대해 '세율 추가 인하'원칙은 그대로 둔 채 단지 시행시기만 2년 유예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렇게 되면 세율인하 시기는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이 되는데, 그 때가면 선거를 1년 앞두고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적당히 타협한 결과 아니겠느냐"고 했다.
양도세 예정신고 세액공제도 '한시ㆍ예외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내년 1년만 과표 4,600만원 이하 부동산 등에 대해서, 그것도 공제율을 10%에서 5%로 낮춰 유지하겠다는 것. 굳이 1년만 더 유지해야 하는 명분도 부족할 뿐 아니라, 내년 이 맘 때 또 다시 폐지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재연될 소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에너지 다소비품목에 대한 개별소비세 과세는 난도질을 당하면서 아예 형체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냉장고, TV, 드럼세탁기, 에어컨 등 4개 품목에 한해 ▦그것도 소비전력량이 상위 10%인 제품에 대해서만 ▦내년 4월부터 3년 동안만 5%의 개별소비세를 물리겠다는 것.
정부 한 관계자는 "이럴 거면 그 요란을 피워가면서 굳이 이런 세금을 왜 도입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하려면 원칙대로 밀어 붙이든지 아니면 말든지 결과적으로 웃기는 세금이 됐다"고 말했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에 부과하는 거래세 역시 도입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세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기본세율은 0.01%로 정해졌지만 3년간 영세율을 적용한 뒤 첫 해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가장 낮은 세율(0.001% 가량)만 매기기로 한 것.
이 경우 100억원 어치 파생상품을 거래한다고 해도 세금은 고작 10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업계 반발이 워낙 커 아예 0% 세율이 고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대변해야 하는 상황, 다른 한편에서는 재정 악화를 걱정하고 민심 이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정부와 여당 스스로 어정쩡한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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