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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2부 (9) 현대모비스 진천공장 이혁교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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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2부 (9) 현대모비스 진천공장 이혁교 차장

입력
2009.12.2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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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dB 미세음까지 척척 "신바람 나니까 26년 했죠"

21일 충북 진천시 현대모비스 공장. 수 십 개 라인 위를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기판과 부품들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윙∼칙', '삐빅' 등 기계 음이 곳곳에서 화음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특이하게 생긴 기계가 눈에 띈다. 여러 개의 봉이 연결돼 있는 기계의 이름은 '바보를 알아보는 기계(Fool Proof System)'.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이 기계를 거치는데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알아차리고 알려준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 그는 "불량률을 낮추고 완성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보물 같은 존재"라며 "저기 저 분이 만들었다"라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20명 넘는 직원들이 현대차 YF쏘나타와 기아차 K7의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에 들어갈 부품을 죄고, 틀고, 막느라 손을 바삐 놀리는 가운데 깡마른 체구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진천공장 품질의 대표선수로 꼽히는 전장생산 1팀의 이혁교 기감(차장ㆍ44)이다. 기감은 태권도로 치면 '검은색 띠'에 해당하는 고수급이다. 처음 입사하면 '사원 갑'을 시작으로 기사-선임기사-기좌-기장을 거쳐 기감에 오르는데 현재 모비스 전체에서 27명, 진천공장에서 3명뿐이다. 이 차장은 기감 중에서도 왕고참이라고 한다. 2001년에는 '품질명장'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기술직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기원' 등극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기감이 '바보 기계'를 만든 이유는 뭘까. 그는 2004년 불량품에 대한 불만이 소비자로부터 끊이지 않던 당시 '불량률을 낮추지 않으면 문 닫을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한다. "자동차 오디오에만 600∼700개의 크고 작은 부품이 들어가고 수 십 개 공정을 거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흠만 생겨도 자동차 전체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 기감은 "불량률 제로를 목표로 1년 가까운 시행 착오 끝에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감은 직원들 사이에서 '그 날'로 불린다. 평소 실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따로 불러 눈물 쏙 뺄 정도로 매몰차게 잘못을 지적하다 보니 이 기감의 '호출'이 있는 날이면 잔뜩 긴장을 해야 하는 이유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기계가 80∼90% 공정을 책임지고 있지만 기술력의 성패는 사람 손에서 정해집니다.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죠." 특히 옛날에는 테이프 넣고 라디오 나오는 게 전부였던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이 이제는 내비게이션, DMB 등 최첨단 기능이 함께 들어가는 등 부품만 1,100개가 넘게 쓰이면서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

호랑이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아는 지 직원들의 얼굴에는 여유와 웃음이 넘쳐났다. "평소에는 세심한 곳까지 챙겨주시니까 괜찮아요. 다 우리 잘 되고 회사 잘되라고 하시는 건데요." 옆에서 작업하며 한 마디 던지는 여직원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섬세함과 끈질김. 이 기감이 지금껏 생산 현장에서 머물며 일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지고 고치고 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일찍이 기술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광주 동일공고 전자과를 택했고 졸업 후 1983년 오디오 제작 회사에 취직하면서 오디오와 첫 인연을 맺는다. 입사 3년 만에 군대에 가고 88년 제대를 했다. 그리고 택한 두 번째 직장이 옛 현대전자. 그는 이 곳에서 자동차 오디오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는 순수 우리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술 개발이 한창이었고 이 기감 역시 캐피탈, 콩코드 등의 오디오 분야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해외 회사들과 비교하면 최소 5∼6년은 뒤져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고 있었지만 외국 회사는 대부분 기계가 일을 했으니까요." 특히 이 기감은 외국 회사 제품을 뜯어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우리 오디오는 내부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선이 얽히고 설켜 있었던 반면 외국 제품은 선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돼있었다고 한다. "충격에 잠이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부터 죽기살기로 공부했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남들보다 몇 배 노력을 했다. 그런 그에게 '고졸 출신', '공고 출신'은 오히려 장벽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낀 적도 많았죠. 하지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술력을 갖지 못하는 한 그런 아쉬움도 쓸모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 오디오의 핵심은 좌우 스피커의 음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 보통 음 차이가 3데시벨(db)이내일 때 정상으로 판단하는데 이 차장은 이 음의 차이를 귀로 듣고 알아 맞춘다고 한다. 일반인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절대 음감'의 비결 역시 들어보고 뜯어보고 만져보고를 수 십만 번 반복한 때문이다. "재미있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이 일을 26년 넘게 하겠습니까."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자신의 손을 거친 오디오들이 수 많은 운전자들을 위로한다는 생각은 그저 신나기만 하다고도 했다.

요즘 그는 디지털 미디어에 푹 빠져있다. 오디오뿐만 아니라 비디오, MP3 등 새로운 기능들이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정확히 모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또 공부를 하고 있단다.

"모르면 후배들 붙잡고 물어봅니다. 자존심 세우느라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것보다는 잠깐 창피하고 아는 게 낫죠."

기술에 대한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목표도 마찬가지였다. "만드는 능력으로만 보면 외국 회사와 거의 맞먹는 수준에 올랐다"는 그는 "문제는 제품을 좀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내구 품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신있습니다." 당당한 목소리에 패기가 넘쳤다.

진천=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현대모비스 '품질대학'

"운전 중 졸음을 쫓는 아이디어 누가 고민하고 있을까?" 졸음 운전자의 잠을 깨우는 첨단부품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을 다룬 현대모비스의 TV 광고에 나오는 문구이다.

'드라이빙 사이언스(Driving Science)'라는 슬로건처럼 모비스는 과학적 운전을 위한 첨단 부품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김병건 품질기획팀 과장은 "자동차 생산 비용 중 70%가 부품 등 재료비가 차지하고 있으며 부품의 경쟁력이 결국 완성차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고객이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고객이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품질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모비스의 부품들이 쓰인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 조사가 기관인 제이디파워의 새 차 품질조사에서 1위에 올랐고 모비스는 미국, 유럽 등 품질 기준이 까다로운 완성차 회사들로부터 같이 일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모비스 기술력의 원천은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품질 교육. 브레이크, 에어백, 전장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들이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사내 품질혁신대학'이 그 밑바탕이다.

모비스는 품질 전문가와 개선 전문가 양성을 통해 회사 안팎에 품질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2002년 품질 교육을 전담할 기구로 '품질대학'을 만들었다. 모든 직원이 3년에 걸쳐 3회 이상 이곳의 품질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해외 현지 공장 직원들, 국내외 협력사 핵심 인원도 품질 교육 추진 로드 맵에 따라 교육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기초-심화-향상 과정으로 나눠 진행하던 교육을 2007년 품질혁신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문가-혁신 과정을 추가해 확대했고 올해에는 소양과정(1∼4단계)-필수과정(5∼6단계)-자격과정(7단계)으로 개편했다.

회사 내 자동차 기술 전문가를 강사로 매주 품질 관련 세미나를 열고 있는데 글로벌 품질 경쟁력을 갖춘 모비스형 품질 경영 체제를 확보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게 회사 내부의 평가이다.

특히 2006년부터는 모든 임원들이 먼저 나서 '품질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비용 절감의 시작'이라는 이름 아래 '6시그마 혁신 활동'을 적극 펼쳐가고 있다. 이영건 품질경영실장은 "유럽에서 원하는 차와 미국서 원하는 차가 다르듯 고객에게 맞는 '매력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 인재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직원 스스로 교육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임직원들이 적극 독려하는 한편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인센티브도 줬다.

그 결과 모든 직원에게 품질 마인드를 심어주고 품질경영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연간 130억 원을 줄이는 성과도 거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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