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한 나약한 여인의 행적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일종의 우화극이다. 극단 여행자의'서울의 착한 여자'는 원작이 의도하는 보편성에다 한국전쟁 직후 피폐해진 서울에서 보통 인간들의 행태를 이입, 완벽한 지옥도를 그려낸다.
선인을 찾으려고 하강한 세 신을 재워주는 오직 한 사람은 헐벗은 창녀 순이다. 신들이 답례로 주고 간 돈으로 새 출발을 하려던 순이는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가진 자들의 횡포를 답습하며 악인으로 변한다.
이 작품은 한국인의 눈에 익은 전후 사회 풍경을 재현한 듯한 무대장치에서부터 한국인의 원체험에 호소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무대 위의 현실이 현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결국 이 무대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즐겁다. 원작의 방대한 대사가 철학적이고도 함축적인 가사로 변해 즐거운 노래로 거듭난다. 기타, 드럼, 아코디언, 바이올린,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며 노래한다. 즐거운 소란이다. 소극장 공간이 자아내는 친밀감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시도다. 전쟁 직후를 재현한 무대, 소품, 의상 등 질박한 장치들은 이 시대 객석의 마음을 눅여준다.
지난 2003년 초연돼 화제를 모았던 무대다. 연출 양정웅. 출연 박선희, 정해균 등. 새해 1월 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4시. 25일 3시 7시, 1월 1일 4시. (02)889-3561~2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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