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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9> 광염의 레드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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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9> 광염의 레드 소나타

입력
2009.12.2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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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 중에서 순결함을 상징하는 흰색은 내가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색이다. 예전 아주 어렸을 적 눈이 왔을 때 내 발자국을 그 위에 찍는 것도 두려워했을 만큼 흰색은 나에게 경외스런 색이었다. 반대로 검정은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는 색이다. 어릴 적 악몽을 꾸면 항상 검정색 속에 싸여 있던 기억이 난다.

검정이라는 색은 땅 끝 속, 두려움을 뜻하기도 하지만 멀리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검정에서 수많은 색상을 볼 수 있었고, 최고의 화려함과 우울함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검정은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았던 색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이다. 그래서 디자이너 초기부터 검정을 즐겨 사용했고, 어떤 컬렉션에서는 전부 검정색으로만 옷을 만들어 무대에 올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 내 별명도 검은 망토다. 늘 검은색 커다란 외투를 둘둘 말아 입고 다닌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디자이너 이상봉'하면 레드 컬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채색만 즐겨 사용하던 내가 처음으로 원색에 도전한 컬러가 레드였다. 그리고 그 동기가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평창동 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처음 우리 집에 불이 난건 91년도였다. 큰 불은 아니었지만 새로 산 보일러가 계속 문제를 일으켜 수리를 받았고, 그러던 중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불이 났다. 불이 났을 당시 나는 한 소재 전시회에서 원단을 고르던 중이었고,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가 지금 가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란 판단에 일을 다 마친 후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나는 집안일에 대해선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청담동으로 매장을 옮긴 지 4일째가 되었을 때 진짜 큰 불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새벽 1시30분경 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한 터라 가족 모두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고, 2층에서 불이 났다는 아들의 목소리에 성급히 위로 올라가 보았다. 천정에 있는 조그만 형광등에서 시작한 불이 서서히 천정을 뒤덮고 있었다.

당시 2층에도 화장실이 있었고 소화기도 집에 있어 빨리 손을 썼다면 충분히 끌 수도 있었지만, 당황한 나머지 1층 화장실까지 내려가 물을 담고 이층으로 다시 올라왔을 땐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 있었다. 나는 급히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와 집에 난 불을 지켜보면서 슬프다는 생각대신 가족이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단지 어머니께서만 이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잠시 우셨던 게 전부였고, 나는 '이젠 집을 고쳐야 되겠구나'하는 생각뿐 가족 모두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동네 사람들과 함께 불타는 집을 바라보기만 했다.

소방차가 11대나 출동했고, 한 시간여가 흐른 후 불이 다 꺼지자 소방관의 안내를 받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안은 온통 그을린 채 물에 잠겨 있었다. 모든 것이 다 타서 난장판이 돼버린 모습을 보자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왜 그림 하나 들고 나가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다용도실 문을 열었을 때 다용도실을 개조해 만들어 놓은 연못에 키우고 있던 잉어 11마리가 모두 살아 있어 그렇게 고맙고 신기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나는 수족관에 잉어를 맡기고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도 불구경을 한 기억이 있다. 내가 살았던 마을 산 너머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불이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뒷산에 올라 불구경을 했었다. 그 후로 나는 빨간색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빨간색 옷은 입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집이 타오르면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터지고 빨간 불덩이가 솟아오르자 순간 불이 무섭다는 생각 대신 그 붉은 불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 불을 보고 나도 모르게 붉은색의 마법에 홀리게 된 것이다. 검정색만 사용하던 나에게 빨간색은 새로운 컬러의 혁명이었다. 무채색에서 벗어나 새로운 색상에 도전하게 만든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화재를 통해 깨달은 붉은색에 대한 황홀함이었다.

디자이너로서 가지고 있었던 색에 대한 두려움, 이를 걷어내고 색에 대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뒤로 나는 빨간색을 포함해 다른 색상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당시 '코튼 쇼'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코튼 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참가했던 컬렉션으로 당시 국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컬렉션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더욱 의미가 컸다. 그 쇼 때 나는 불꽃처럼 뾰족한 모자와 함께 온통 붉은색의 옷을 만들어 패션쇼를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의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레드 컬러는 무의식 중에도 나의 쇼에서 중요하게 사용돼 왔다. 그리고 이 때부터 많은 디자이너와 후배들 사이에서 이상봉하면 '빨간색'이 연상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듣게 되었다.

나의 패션 인생과 빨간색의 필연적 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레드'라는 컬러는 내가 깨닫지 못한 순간에도 내 몸에 흐르는 피처럼 늘 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미친 듯이'일하고 '미친 듯이'즐기고 '미친 듯이'빠져들고. 내가 즐겨 사용하는 이 '미친 듯이'란 말도 내 디자인 속에 박동하고 있는 이 붉은색 때문은 아닐까.

이전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감탄하며 보았던 광활한 초원을 붉게 물들인 석양이 떠오른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가장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다시 한 번 넋을 잃고 그 무한한 붉은 매력에 내 몸을 온통 적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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