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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필통의 '내맛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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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필통의 '내맛이 어때서'

입력
2009.12.2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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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필통의 '내 맛이 어때서'는 먹거리로 우리 시대를 보는 풍자극이다.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로 새로운 표현 어법을 탐색하는 무대 전략 덕에 상연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좋은 재료만 쓴다는 고집으로 주변의 입맛을 평정한 '이만근 김밥집' 바로 옆에 '임실 할머니 김밥'집이 보란 듯이 자리잡으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시골을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을 기조로, 쇼걸의 댄스와 매스컴 출연 등 대대적인 광고전을 펼친다.

단골들이 하나 둘 떠나자 만근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할머니 김밥집 사장은 발효음식의 본고장인 임실에서 나는 삭힌 단무지가 비밀이라며 체인점을 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해 보니 엄청난 프랜차이즈 비용으로 돈이 마구 새나간다. 임실로 내려가 할머니를 구슬린 끝에 단무지의 비밀을 캐지만 싸움은 녹록지 않다. 결국 원조 경쟁으로 치달아 엄청난 홍보 비용을 뿌려대지만 모두 거덜나고 거미줄만 치게 된다.

여기까지라면 세태 풍자극이다. 그러나 무대는 양심과 사후 세계까지 보여준다. 만근의 내면을 보여주는 분신이 등장한다. 만근이 경쟁심에 눈이 멀었을 때 분신은 하얀 옷에 검댕이를 칠한다. 옆집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주인을 위해 옆집의 집기를 부수기까지 한다. 결국 하늘로 끌려 올라간 만근은 김밥의 속 재료 신세가 되어 둘둘 말린다. 그러나 교훈적 세태 풍자극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면이 있다. 극장 안을 메우는 테크노음악 등 청각 장치에다 코러스의 등장 덕에 시청각이 즐겁다. 중국 경극 무대처럼 검은 옷을 입고 나와 극의 진행을 암시하고 유도하는 그들은 코믹한 동작으로 김밥을 말거나 거미줄을 친다. 임실집 사장이 돈을 삽으로 퍼 담는 대목에서는 환성을 올리기까지 한다.

무대 운용에 재치가 번득이다. 김밥의 비밀을 캐려 만근이 임실로 내려가는 대목은 바퀴 달린 작은 의자 5개와 5명의 배우로 족하다. 맨 앞의 운전사와 4명의 승객이 발을 굴리면서 줄줄이 가는 모습으로 버스의 이동을 표현하고 급정거 때는 일제히 앞쪽으로 쏠리는 동작을 펼치는 등 마임적 전략과 일반 연극 무대를 하나로 합쳤다. 연극을 보다 연극답게 하는 것은 메커니즘이 아니라 진정한 연극적 전략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필(feel)이 통(通)한다는 뜻으로 지은 극단 이름이 제대로 힘을 쓰는 감각적 무대다. 새해 1월 3일까지 아름다운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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