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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홈리스의 힘겨운 겨울나기/ <상> 도시의 유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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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홈리스의 힘겨운 겨울나기/ <상> 도시의 유랑자

입력
2009.12.2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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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7일 새벽 3시. 갈데 없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가장 싼 값에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서울 영등포역 근처 지하1층 A다방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숨을 턱 막았다. 오래된 옷ㆍ가방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와 고린 발 냄새, 바닥에 쌓인 담배 냄새까지 뒤섞여 이곳을 처음 찾은 뜨내기들은 5분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였다.

"자고 가시게요? 3,000원이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종업원은 30대 초반의 뜨내기 근로자로 위장한 기자를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 듯했다. 종업원은 카운터 안쪽에 있는 홀로 안내한 뒤 커피, 녹차, 사이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카운터를 빼고 82㎡(약 25평) 크기의 홀은 흔한 다방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홀 가운데에는 커피를 놓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탁자 세트 대신 안쪽 텔레비전 3대를 향해 한 방향으로 정렬한 의자 24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홀 양 옆으로는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간이침대 8개와 한 명씩 누울 수 있는 좁은 평상이 2개 놓여있었다.

그곳에서 되는대로 이불을 덥고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은 27명 정도. 4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남성들이었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화장실은 약 1㎡ 정도의 크기에 소변기와 비누, 수도꼭지를 갖추고 있었다. 소변을 보기에도 좁게 느껴지는 공간이지만 거주자들은 이곳서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고 했다. 대변기가 비치된 곳은 '고장'이라는 글귀와 함께 문이 잠겨 있었다.

"공기가 답답해서 못 자겠네!" 자는 줄 알았던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이날 밤만 벌써 두 번째다. 냄새도 냄새지만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자는 데다 겨울이라 환기가 안되다 보니 공기가 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좋지 않은 공기 탓인지 밤새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사람에 3.3㎡(1평)도 안 되는 수면공간, 대변도 볼 수 없는 화장실, 허리를 완전히 펼 수 없는 의자…. '21세기 쪽방'으로 불리는 몇몇 다중이용업소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변종 다방의 풍경이다. 국토해양부 고시 최저주거기준은 가구원이 1인인 경우 침실 1개, 총 주거면적은 12㎡(약 3.6평)지만, 이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오늘은 추워서 일이 없나 보네. 추울 땐 쉬는 게 낫지." 사장의 큰 목소리에 문득 잠을 깨보니 오전 5시30분이다. 몇 군데 빈 자리를 빼고는 늦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옆 자리에 누웠던 한 남자는 "겨울엔 일주일에 이틀 일 나가고 나머지 날은 교회에서 점심 해결하는 게 보통"이라면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몸 상하면 여기(다방)마저 못 오니까 여기 사람들에겐 몸간수가 제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의 영등포역 근처 K 만화텔도 만화책은 거들떠 보지 않고 잠만 청하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가득했다. 만화텔은 기존 만화방을 숙박에 더 적합하도록 개조한 것. 1층에는 일반 만화방과 마찬가지로 만화를 볼 수 있는 소파가 놓여있지만, 2층은 공간을 잘게 쪼개 잠자는 방들을 만들어놓았다. K 만화텔 2층에도 약 3㎡ 크기의 방들이 30개 정도 마련돼 있었다. 2층 방에서 하루 묵는 비용은 7,000원. 일반 만화방보다는 2,000원, 다방보다는 무려 4,000원이나 비싸다. 그만큼 서비스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2층에는 샤워장이 있고 빨아놓은 수건과 드라이기, 선풍기와 대형거울이 비치돼 있다.

그러나 숙박업소가 아닌 만큼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우선 방과 방 사이가 얇은 칸막이로 나뉘어져 옆방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구조다. 또 각 방에는 길이 2m, 폭 0.8m짜리 침대 하나와 만화책을 놓을 수 있는 작은 탁자 외에는 아무런 생활용품도 없었다. 침대는 오랫동안 빨지 않은 듯 곳곳이 변색되거나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이전에 썼던 사람의 물건이나 만화책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고통이었다. 기계설비업을 하다 두 달 전 부도가 난 뒤부터 이곳 2층 방에 투숙해왔다는 A(60)씨는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손자를 낳았는데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면서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런 사연 하나씩 없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다방, 만화방, PC방 등 비주택 거주자 207가구를 조사한 결과, 4분의 3이 가족해체를 겪고 있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잇따라 철거되는 쪽방을 대신하는 다중이용업소의 환경은 오히려 쪽방보다 못하다"면서 "일할 의지가 있는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주거정책, 고용정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명기자

김현우기자

남보라기자

■ 단돈 1000원이라도 싼 곳 전전

"PC방에서 머물다 피곤하면 방에 가는 거예요. 여인숙, 거기 만원이면 자요."(한 워킹 홈리스) "쪽방 같은 데는 8,000~9,000원 줘야지 하루 밤을 잘 수 있는데, 만화방 등은 3,000~4,000원에서 5,000~6,000원이면 되죠. 단돈 1,000원도 굉장히 크기 때문에 싼 곳을 찾아 흘러 가는 거죠."(숙박업소 관계자)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워킹 홈리스들은 일시적인 소득에 따라 고시원 쪽방 만화방 다방 등 여러 유형의 비주택 시설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들이 비주택 시설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아닌 숙박료다. 얼핏 비슷비슷한 수준의 숙박시설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 시설의 숙박료가 한 달에 많게는 10만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돈 1,000원도 아쉬운 이들에겐 하루 밤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비주택 숙박시설 중 가장 비싼 곳은 고시원이나 여관, 여인숙이다. 비좁고 옆방의 소음에 시달려야 하지만, 그나마 방의 형태를 갖춰 독립적 공간이 허용된 것이 장점이다. 숙박료는 하루 1만원 정도로 한 달로 치면 20만원대. 방의 형태를 갖고 있는 쪽방도 한달 숙박료가 20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고시원이나 쪽방은 보통 월세를 받다 보니 목돈이 필요하다.

일거리가 떨어져 목돈이 벅차게 되면 짐을 싸서 만화방이나 다방 등 다중이용시설을 떠돌 수밖에 없다. 하루 묵을 수 있는 요금이 보통 3,000~5,000원으로 싼 값에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 동자동에서 쪽방을 운영하는 정선덕(56)씨는 "만화방은 A, B, C 중에 C급에 속하지만 돈 없고, 추우니까 일용직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워킹 홈리스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수시로 이동하는 유랑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비주택 시설 거주민 20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현 거주지에서 생활한 기간이 1년 이하라는 응답이 37.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임덕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1년 미만 거주자들의 상당수는 PC방 만화방 고시원 여관 등의 시설에 있는 사람이었다"며 "3년 넘게 산 사람들은 비교적 주거가 안정된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등에서 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중이용시설 거주자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의향을 묻는 설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92.3%나 돼 60~70%를 나타낸 여타 주거시설 이용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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