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막다른 골목이 있다. 점심을 먹고 산책 삼아 에둘러 걸어오다 처음 들어선 골목길, 끝이 웬 집의 담장으로 막혀 있다. 사방이 길과 연결된 아파트에 살다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막다른 골목에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막다른 골목' 하면 왠지 두려움부터 앞선다.
어릴 적 보았던 만화나 청춘물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던, 개나 치한에게 쫓기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줄 모르던 주인공의 절박함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쓰는 한 선배가 자신의 고향에 길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짧막한 산문에서 "길은 새로 생길 때 '났다'라고 하고 없어지면 '묻혔다'라고 한다. 그것은 '끊어졌다'와는 또 다른 의미이다." 끊어진 것과 달리 묻힌 것은 아예 길이 흔적도 없어진 사라진 것을 말한다.
그가 어릴 적 소꼴을 먹이러 다니면서 풀과 어린 나무들을 밟아 생겼던 오솔길은 아주 오래 전에 묻혔을 것이다. 그의 추억 속 길들이 다시 나고 있는 걸까. 아마도 제주도의 올레길에 힘을 얻어 시작한 일인 듯하다. 묻힌 길이란 쓸모가 많지 않아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은 길은 목적지까지 직선의 길, 걷기 편한 길들일 것이다. 막다른 길에 도착하면 돌아나올 수밖에 다른 재간이 없다. 느긋하게 걷는다. 어차피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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