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국 극장의 영화 상영시장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9년 1~11월 영화산업통계에 따르면 전체 극장의 관객 누계는 1억 3,902만명, 매출액은 9,518억으로 연말 흥행까지 합치면 무난히 1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가장 강력한 힘은 한국영화의 약진이다. 최근 몇 년의 침체에서 벗어난 반가운 징후들이 나타났다. 3년 만에 등장한 관객 1,000만 영화 '해운대'를 비롯해 박스오피스 상위 10편 중 7편이 한국영화다. 덕분에 2006년 이후 계속 추락해 지난해 30% 밑으로 떨어졌던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독립영화도 모처럼 독립만세를 불렀다. '워낭소리'는 한국 독립영화 사상 가장 많은 292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종전 기록은 '우리학교'(김명준 감독ㆍ2006)의 10만명이었다. '워낭소리'에 이어 '똥파리' '낮술' 등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작품들이 나오면서 '1만명만 들어도 대박'이라던 독립영화로 1만명 이상 관객을 모은 작품이 6편이나 됐다.
한국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선전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받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호평을 받는 등 역대 최다인 10편이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 등 해외영화제에서 무려 21개의 상을 휩쓸었다.
이처럼 안팎에서 거둔 성과를 위협한 것은 불법 다운로드다. 올해 최고 화제작인 '해운대'와 '박쥐' 는 해외 개봉과 DVD 출시를 앞두고 인터넷에 불법 유통됐다. DVD와 온라인 등 영화 부가시장이 가뜩이나 쪼그라든 가운데 터진 이 사건들에 영화계는 위기감을 느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안성기 박중훈 등 영화배우들이 힘을 합쳐 합법 다운로드 캠페인을 펼쳤지만 불법 다운로드는 여전히 고질병으로 남아 있다.
불황으로 투자가 위축되면서 돈 벌 것 같은 대작에만 돈이 몰리는 제작비 양극화 현상도 심해졌다. 100억원대 대작인 '해운대' '국가대표' '전우치'가 나왔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대부분 10억~15억 선에서 쪼들렸다.
올해 세상을 떠난 원로 영화인으로는 '오발탄' 등 한국 사실주의 영화의 거목 유현목 감독, '진짜 진짜 좋아해'의 문여송 감독, '사랑하는 사람아' 시리즈를 만든 장일호 감독, 왕년의 명배우 도금봉 등이 있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배우 장진영은 암 투병 끝에 30대의 나이에 요절했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화제작을 만든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도 한창 일할 나이인 44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 영화계를 안타깝게 했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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