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와 속도경영'
삼성 현대ㆍ기아차 SK LG GS 신세계 등 최근 단행된 주요 대기업의 인사에서 공통으로 읽을 수 있는 화두이다. 재계가 새해 공격 경영을 위한 준비를 끝낸 만큼 2010년 재계의 모습은 더 젊어지고,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각 그룹 창업주의 3세들이 경영의 전면에 나서며 자연스레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대표적인 경우.
그는 앞으로 최고운영책임자(COOㆍChief Operating Officer)로 삼성전자의 7개 사업부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을 맡게 됐다. 타이틀은 부사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장들을 조율할 수 자리인데다가 대외적으로는 최고경영자(CEO)에 버금가는 자리이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으로 승진한 10명 중 9명이 50대 초반인 점도 이번 인사의 성격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신세계도 지난달 이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을 그룹의 주력사인 신세계의 총괄 대표이사로 임명하고,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반면 전문경영인인 구학서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놓았고, 석강 대표와 이경상 이마트 대표도 상임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에 앞서 8월에는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자리를 굳혔다. 또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 싱가포르 현지법인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의 3세 경영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위기 극복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선 권한을 가진 대주주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측면도 강하다"고 말했다.
속도경영은 각 기업의 인사와 맞물린 조직개편에서 확인된다. 먼저 삼성전자가 부품과 세트 부문으로 나뉘었던 조직을 최지성 단독 CEO 아래 7개 사업부로 재편했다.
삼성전자가 조직의 틀을 1년도 안 돼 다시 바꾼 것은 그 만큼 상황이 급박함을 보여준다. 삼성 관계자는 "정보기술(IT) 업체에게 스피드는 생명이나 마찬가지"라며 "양대 부문으로 나뉘어진 상태에선 아무래도 의사 결정의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어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최고유통채널 책임자인 제임스 닐 셰드 부사장을 북미지역본부 미국법인장에 임명하는 등 외국인 임원을 대거 현지 법인장으로 선임한 것도 스피드 경영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또 커스터머 릴레이션십 부문을 CEO 직속으로 만들거나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의 태양전지사업을 AC사업본부로 이관한 것도 사업 가속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SK에너지도 의사결정의 스피드 제고를 위해 자원개발 사업을 CEO 직속조직으로 분리∙독립시키기로 했다. 또 다른 '회사 내 회사'(CIC)에 속해 있던 화학사업부문과 기술원도 독립적인 CIC 형태로 운영키로 했다.
또 SK가 13개 계열사의 90여개 중국 현지 법인의 투자와 사업전략 수립ㆍ실행 등을 총괄 관리하는 중국 통합법인을 새로 세운 것도 속도 경영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시장의 변화에 누가 1초라도 먼저 발 빠르게 대응하는가가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다"며 "조직 슬림화를 통해 속도 경영을 펴는 것이 최근 기업들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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