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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동체 방송 '박창원의 자드락길 세상' 소출력 방송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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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동체 방송 '박창원의 자드락길 세상' 소출력 방송 최우수상

입력
2009.12.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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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평생 인터뷰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16일 오후 대구 수성구 사월동의 한 법당. 한겨울인데도 군불도 때지 않은 찬 바닥에 맨발로 들어선 유완순(51ㆍ여)는 짧은 스포츠 머리가 주는 강한 인상과 달리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삼발이에 녹음기를 장착하던 박창원(43)씨가 엷은 미소를 띄우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냥 호흡을 길게,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박씨가 1년 넘게 직접 만들고 진행하는 대구 성서공동체FM 라디오 방송(89.1㎒)의 '박창원의 자드락길 세상' 주인공은 대부분 유씨처럼 "평생 인터뷰 같은 거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카메라도 아닌 녹음기 앞에서 바짝 긴장하던 이들도 박씨의 편안한 진행에 끌려 한 번 말문을 트고 나면 살아온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이날 만난 유씨도 그랬다. 그는 대구에서 여성으로는 유일한 '5ㆍ18 민주화운동' 유공자다.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대학 4학년 때 '광주' 소식을 들은 그는 무작정 광주로 향했다고 한다.

"1980년 5월23일 광주로 가는 길에 전주에서 제지를 당했어요. 그때 마침 광주를 빠져나온 앰네스티 회원한테서 들은 진압군의 만행을 종이 두 장에 깨알같이 써서 속옷 안에 넣고 대구로 돌아왔어요. 부산을 오가며 대규모 학생시위를 계획했는데,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박씨와 동행한 전직 언론인 여은경(55)씨는 유씨의 이야기를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이 기록은 프로그램을 제작, 편집할 때 맥을 잡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다. 작가나 PD가 따로 없이 박씨가 기획ㆍ취재ㆍ제작ㆍ진행 '1인 4역'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낸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음대 출신인 유씨는 졸업 후 소리패 '산하'에서 활동하며 100여편의 노래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삶은 순탄치 않아 10여년 전 신내림을 받고 나선 가끔 굿도 한단다. 박씨가 분위기 띄우려 시킨 막거리를 한 두 잔 걸친 유씨는 걸쭉한 목소리로 직접 작사ㆍ작곡한 '떠나는 우리 님', '길목에서'라는 노래도 불렀다. 오후 3시30분쯤 시작한 인터뷰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자드락길은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박씨는 매달 둘째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는 '자드락길 세상'을 통해 산골 마을을 잇는 이 길의 뜻처럼 '평범한 이웃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며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사이에 작지만 소중한 길을 내고 있다.

일명 '동네 라디오'로 불리는 소출력 방송이어서 대구 달서구 신당동에 자리한 방송국 반경 5㎞ 안에서만 들을 수 있지만, 인터넷과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층도 생겼다. 그 덕분에 10월 말 전국 7개 소출력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 '2009 공동체라디오 어워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탔다.

수상작은 지난 4월 방송한 '곡주사 이모' 편. 38년간 대구 염매시장에서 막걸리를 팔았던 곡주사 주인 정옥순(76ㆍ여)씨는 당시 박씨를 만나자마자 재산목록 1호를 꺼내 보였다. 7권의 '외상장부'였다.

지금은 곡주사를 남에게 넘긴 정씨에게 이 장부는 언제고 추억의 그 시절로 안내하는 타임머신이다. 정씨는 "죽기 전에 이 놈들 불러서 두부김치에 직접 빚은 동동주 한잔 따라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방송이 나가자 인터넷 게시판에는 '20년 만에 술 먹으러 갈게요'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박씨가 성서공동체FM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경북대 대학원에서 소출력 방송 활성화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지난해 봄. 연구를 위해 이곳에 눌러 살다시피 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평범한 이웃들의 특별한 삶'을 담은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냈다가 덜컥 제작과 진행까지 맡게 됐다.

프로그램은 박씨가 내레이션을 하면서 현장 인터뷰를 섞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이 즐겨 부르는 노래 두 곡을 녹음해 들려주는 것이 이채롭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에서 소개한 안동 하회마을의 뱃사공 이창학씨를 비롯해 고서점의 산증인 박창호씨, 은둔의 조각가 이광달씨, 팔순에도 춤판을 떠나지 못하는 '춤의 연인' 정순영, 노 교육자 이 목씨, 작은 교회운동 펼치는 인권운동가 현순호,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씨 등 박씨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다.

70, 80대의 고령자가 많고 이념적 색채가 강한 인물도 여럿이다. 박씨는 "이 방송이 훗날 누군가 필요로 할 지 모르는 '육성자료'를 남기는 기록의 의미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광복 후 대구 여성계의 리더던 우신실 할머니는 올 5월 아흔다섯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 인터뷰가 무산됐다. 인물 섭외에만 보름 이상 걸리고, 고령자가 많다 보니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 해 인터뷰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기 일쑤다.

박씨는 그래도 즐겁다. "비좁고 때로는 울퉁불퉁한 길을 걸었던 이웃을 주변에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일이죠." 계명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대학강의 출강에 방송까지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이지만 20여명의 인터뷰 대상이 적힌 수첩을 들여다 보면 흐뭇해진다고 했다.

유완순씨의 사연은 내년 1월 8일 방송된다.

글·사진 대구=전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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