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메이오 등 지음ㆍ노승영 옮김/책보세 발행ㆍ349쪽ㆍ1만5,000원
영국의 일곱 살 소녀 세라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MP3 플레이어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나이지만 학교에서든 체육관에서든 MP3 플레이어를 광고하고 친구들에게 사라고 권유한다. 친구들을 MP3 팬클럽 사이트에 가입시키는 것도 그의 임무다. 세라는 이렇게 해서 판촉 수당을 받는데 그것은 실적에 비례하는 성과급으로 지급된다. 세라 말고도 판촉에 나서는 또래의 아이들이 있다. 그렇게 영국의 채팅 사이트 더빗은 일곱 살부터 열한 살까지의 아이들을 MP3 플레이어와 장난감 판촉에 동원했다. 아이들은 매주 판촉 결과를 회사에 보고한다. 아이를 상대로 하는 마케팅에서는 아이가 가장 큰 효과를 낸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를 겨냥한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가도 마찬가지다. 중국만 놓고 보면 최근 4년간 아동복 판매가 2배 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아이들이 소비에 급속히 물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국의 소비자운동가 에드 메이오, 저술가인 애그니스 네언이 소비에 탐닉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고발한다. <컨슈머 키드> (원제 'Consumer Kids')라는 책 제목이 상징적이다. 컨슈머>
아이가 '컨슈머 키드'로 자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기업의 마케팅이다. 기업은 물건을 팔기 위해 아이에게 집요하게 접근한다. 아이는 현재의 고객이자 미래의 잠재 고객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광고에 노출시키는 효율적 수단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 아이들이 쉽게 결제할 수 있는 장치까지 갖췄다. 기업은 아이들의 네트워크를 이용, 맞춤형 정보를 수집하고 정교한 마케팅을 한다.
아이의 방은 미디어에 점령돼 있다.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하루의 4분의 1을 보내는 이곳에는 오디오, TV, 컴퓨터, 게임기 등이 즐비하다. 아이는 통제 없이 노출된다. 앞서 언급한 일곱 살 세라 역시 채팅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이런 환경에 놓이면 아이들은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한다. 가진 것에 싫증 내고 새 것을 사려 한다. 소비에 대한 심적 압박을 느낀다. 아이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도 능숙하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늘 미안한 부모의 심리를 이용,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행태를 '미안해 증후군'이라고 한다. 요즘은 가정의 구매 결정에서 아이가 부모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다. 시장조사나 컴퓨터게임 개발 등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이제 단순 소비자의 단계를 넘어섰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에 몰두하는 아이는 광고 모델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패스트푸드나 고지방 음식을 쉽게 섭취, 비만 등에 시달릴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데 그 경우 정신적인 행복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집요해지는 기업의 마케팅 공세에 속수무책 가만히 있어야 할까. 두 저자는 아이를 현명한 소비자로 키우기 위한 가정과 학교의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모아 만든 '어린이 마케팅 선언'을 책의 뒷부분에 넣어 기업에는 이렇게 요구한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아이들을 존중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제품은 광고하지 말아달라.'
책은 영국 사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소비라면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중산층 이상 한국 가정의 자녀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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