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의 봉제 틈마다 모래알이 고여 있다. 작년 여름 한 바닷가로 놀러갔을 때 사용했던 트렁크이다. 우리는 한나절 그 해안가에 앉아 모래 조각 놀이를 했다. 떤다고 잘 떨었는데도 옷에 묻어온 모래알들이 이렇게 가방에까지 떨어졌던 모양이다. 해안과 바로 연결된 숙소의 로비는 관광객들이 신발과 옷에 묻혀온 모래알들로 서걱거리곤 했다.
청소하는 이들의 손길이 바빴다. 뜨거운 태양과 살갗에 닿을 때마다 화끈거리던 모래알과 조금만 걷어내도 금방 드러나던 물기 많은 모래, 무엇보다도 즐거워하던 큰애의 얼굴이 떠오른다. 해안의 모래가 줄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관광객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저렇게 사람들에 묻어 옮겨지는 모래 때문에 어느 해수욕장에서는 모래를 새로 사서 붓는 작업도 한다고 들었다. 트렁크를 대충 떨었는데도 반 줌은 된다.
오랫동안 타지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귀국하면서 그곳의 흙을 유리병에 담아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게도 먼 이역에서 가져온 돌멩이가 몇 개 있다. 요르단의 한 소년은 그곳의 돌을 깨서 팔기도 했다. 갖가지 색의 모래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돌멩이. 시카고 트리뷴타워의 외벽에는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돌들이 붙어 있다. 그곳에 새겨진 명언처럼 단지 건물이 아니라 영원을 지은 것이다. 단지 모래알이 아니라 그 여름날의 추억이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