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기부가 우리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는 통 큰 기부부터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이웃을 위해 쓰는 이들까지 다양한 기부가 늘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의 세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이때, 자발적인 기부가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기부를 상찬하는 세태에도 문제는 있다. 기부를 일종의 면죄부로 삼아, 탈세를 저지른 기업인이나 공직자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범법행위에 대한 죄 갚음을 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또한 거액 기부자가 세금 추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 역시 전도된 의식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세금은 악이고 기부는 선이라는 식의 사고가 많지만, 사실 어떤 점에서 세금은 기부이기도 하다. 세금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었으니 그 일부를 사회 유지를 위해 내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면서 수입을 얻었다면, 그건 내가 잘해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 함께 사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금은 그에 대한 대가다.
더구나 내가 낸 세금은 나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이 생활을 유지하고 교육을 받는 데 보탬이 된다는 점에서 기부와 다름이 없으니, 납세는 의무일 뿐 아니라 기쁨이기도 하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빈부 격차가 심한 미국에서는 기부가 권장되지만 사회복지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세금이 기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북유럽 국가의 부자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할 정도다.
"국세청에 가능한 한 많은 세금을 주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하루에 4100만 원꼴로 세금을 낸다."고 말한 사람은 노르웨이 갑부 올라브 톤이다. 그만이 아니라 북유럽의 부자들 대부분이 50%에 달하는 소득세를 내고 있다. 바보도 아닌데 이렇게 세금을 펑펑 낼 때는, 세금을 내는 것이 자신과 이웃과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며, 정부가 세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제때 제대로 잘 쓸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기부액은 적지만 세금은 꼬박꼬박 내온 나는, 납세도 기부라고 생각하며 자족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래도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빈부격차는 느는데 복지 예산은 줄고, 왜 하는지도 모를 4대강 사업에는 수십 조원을 쓰겠다니 정부의 씀씀이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면서 서울대와 일부 기업에 파격적인 혜택을 약속하는데, 결국 내가 낸 세금으로 생색을 내는 셈이라 입맛이 쓰다.
정부는 빨리 예산을 통과시키라고 성화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세금 내는 국민들이 이들 정책에 대해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민의 돈을 쓰는 정부는 한 발 물러나, 돈을 준 사람의 뜻을 살피고 그들과 대화해야 할 것이다.
150여 년 전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노예제도와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정부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하고 시민 불복종을 주장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보다 나은 정부를 얻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보다 나은 정부를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삽질은 시작되었는데 가슴은 답답할 뿐이다.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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