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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4> 에밀레종의 신비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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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4> 에밀레종의 신비한 소리

입력
2009.12.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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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와 같은 역사기록이 아니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글로 금석문(金石文)이 수없이 많다. 고구려의 옛 터전에 남아 있는 광개토대왕비나 충청도 성주산 기슭에 남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같은 국보급이 적지 않고, 국립 경주박물관 입구에 우뚝 매달린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에밀레 설화'와 함께 그 명문(銘文)이 또한 명문(名文)이다.

'지극한 도리는 형상의 바깥까지를 포함하므로 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 없고, 커다란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울리므로 들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가설을 세워서 세 가지 진여(眞如)의 깊은 뜻을 보이고 신성한 종을 달아서 일승(一乘ㆍ부처님 말씀)의 원만한 소리를 깨닫게 하였다.(중략)

삼가 생각하건대, 성덕대왕께서는…어질고 충직한 사람들을 등용하여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예악을 숭상하여 풍속을 살리시니 들에서는 생업의 근본인 농사에 힘썼고, 시장에는 넘치는 물건이 없었다. 당시 세상에서는 금과 옥 같은 보물을 싫어하였고, 문화를 숭상하였다.

…이 때…신령한 그릇이 이루어지니 모양은 산악이 솟은 것 같고 소리는 용이 우는 것 같았다. (그 소리)위로는 하늘 끝까지 이르고 아래로 끝없는 지옥까지 통할 것이다. 보는 자는 기이하다 칭찬할 것이고 듣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하략)'(김필해 지음, 김상일 교수 번역, 성낙주: <에밀레 종의 비밀> )

성낙주 선생의 <에밀레 종의 비밀> (푸른역사)에 따르면, '에밀레 전설'은 신라 당대로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어느 사료에도 전하지 않고 천 년을 민간에 떠돌다가, 알렌ㆍ헐버트 등 서양 선교사들의 글에서부터 성덕대왕신종의 연기설화로 굳어진 것이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신종의 '신령한 그릇이…위로 하늘 끝까지 이르고 아래로 끝없는 지옥까지 이르는' 그 소리의 신비한 생명성 때문일 터이다.

실제로 이 종의 소리와 범종 몸체의 떨림 모양을 분석해 만든 김석현(강원대)ㆍ이장무(서울대) 교수들의 '맥놀이 지도'에 따르면, 종을 치고 50여 가지의 낱소리들이 다 사라진 뒤에 에밀레종만의 신비한 소리의 세계는 숨소리 같은 64 ㎐와 어린이의 울음소리 같은 168 ㎐의 음파만이 9초 간격으로 지배하는 신비한 소리의 세계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신종의 백미는 또 하나의 '소리의 신기(神器)'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종의 머리(종정부)에 한 마리 용(龍)과 쌍으로 얹은 대목이다. 이것은 두 마리 용을 등지게 앉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 근본부터 다른 신라 종의 제일 특징이며, 후대 우리 종의 특징이 되었다.

'만파식적'은 백성의 소리의 상징일 터이며, 임금은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예악을 숭상하여 풍속을 살렸기에 이런 신기가 나올 수 있었을 터이다. 들에서는 농사에 힘썼고, 시장에는 넘치는 물건이 없으며, 사람들은 금은 보물을 싫어하고, 문화를 숭상하는 세상. 에밀레종의 명문은 그 소리를 듣기만 해도 복을 받는 이런 가난한 영혼들의 삶과 예술의 비밀을 웅변한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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