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예술은 현실과의 밀접한 관련 아래 '존립'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한 해였다. 경제위기라는 악조건의 결과를 피부로 체감한 2009년 우리 연극과 뮤지컬은 생존의 해법을 모색하려 애써야 했다. 시행착오와 새로운 도전이 이어졌다.
연극
내용은 천양지차이지만 전라(全裸) 연기라는 공통점 때문에 선정성 논란을 빚은 두 연극이 있었다. '논쟁'과 '교수와 여제자'는 각각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대 육체적 욕망의 여과 없는 표현이라는 정반대의 접근을 했다. 올해 펼쳐진 이 두 무대는, 결국 중요한 것은 갖가지 양상들의 우열을 판정할 능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계기였다. 우리 연극은 진정한 소비자 주권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올해의 연극 베스트 3'로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마라', 서울시극단의 '다윈의 거북이', 극단 백수광부의 '봄날'을 꼽았다. 이는 박근형, 김동현, 이성열 등 40대 연출자들에게로 우리 연극의 주도권이 안정적으로 넘어갔음을 말해 준다.
연극계 역시 경기 불황에 신종 플루라는 악재가 겹쳐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언제나 열악했던 제작 현실에 단련돼 온 만큼 각개격파 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했다. 특히 중대형 공연장들이 잇달아 개관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연극 전체가 진일보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추억의 옛 국립극장이 34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으로 되살아나 연극 전문 제작 극장으로서깃발을 올렸다. 또 대학로 상업화의 우려를 불식하듯 대학로 한복판에 대학로예술극장이 개관, 명동의 꿈에 동참했다. 잠들어 있던 남산의 드라마센터 역시 남산예술센터로 거듭나, 연극 전문 중극장 부활의 추세에 큰 힘을 보탰다.
올해 연극계 최대의 무대는 10월 13~11월 21일 아르코예술극장 등 서울의 대표적 극장 6곳에서 펼쳐진 '20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였다. '아날로그와 디지로그'라는 대주제 아래 연극 19편, 무용 17평, 복합장르 4편 등 세계 12개국에서 온 40개 작품을 40개 단체가 40일간 공연한 이 행사는 관객들에게 동시대 무대 현장의 첨단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뮤지컬
"2009년은 국내 뮤지컬 시장 매출이 감소하는 첫 해가 될 것이다."
뮤지컬 평론가 조용신의 말처럼 금융 위기와 신종 플루에 하반기 과다 경쟁까지 겹친 올해 뮤지컬 시장은 다소 우울했다. 인터파크 집계에 따르면, 11월 말까지 뮤지컬 총 공연 수는 1,541개. 지난해 1,544개와 큰 차이는 없었다.
상반기는 '브로드웨이 42번가''시카고' 등 검증받은 공연들의 재탕, 삼탕이 주를 이뤘다. 반면 하반기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영웅''남한산성''퀴즈쇼' 등 중극장 이상 창작뮤지컬이 제작돼 우리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디뮤지컬컴퍼니가 무대, 의상을 새롭게 바꿔 공동 제작한 '드림걸즈'는 11월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에 상륙했고, '지킬 앤 하이드', '삼총사' 등 라이선스 뮤지컬을 재해석한 다른 작품도 아시아 등지로 수출 길을 텄다.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올해 문을 연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코엑스 아티움'(800석)과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은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와 더불어 뮤지컬의 주 무대를 강남으로 옮겨왔다.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도 재개관 작으로 뮤지컬 '살인마 잭'을 선보였다.
이 같은 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실은 빈약했다.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정작 무대 뚜껑을 열어보니 적자로 드러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풍요 속의 빈곤을 상징했다. 대형 예매 사이트엔 30~ 40%의 할인율이 적용된 공연만 연중 넘쳐났다.
제작사들은 돌파구의 하나로 '스타 캐스팅'을 택하는 한편, 완성도에 아쉬움을 남겼다. '모차르트'나 '금발이 너무해'는 아이돌 스타의 티켓 파워가 작용했으나, 침체 판도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뮤지컬임에도 뚜렷한 음악적 성과가 없었던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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