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와 청와대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가 17, 18일 이틀동안 국회 예결특위에서 몸싸움을 벌이면서 예산안이 표류하고 있는데도 누구도 책임 있게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과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여 예산안 단독 처리를 시도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야당은 4대강 예산이 대폭 삭감되지 않으면 몸으로 예산안 처리를 막겠다는 강경 대응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여야가 마주 달리는 자동차처럼 계속 치킨게임(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게임)을 벌인다면 연말 국회는 여야 정면 충돌로 치닫게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8일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내년 예산안 처리 문제를 협의했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원로와 중진 의원, 학계 인사들은 "여야와 청와대가 서로 한발씩 양보해서 대타협을 통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여당은 강행 처리 유혹에서 벗어나 야당의 예산 삭감 주장을 일부 수용하고, 야당은 물리력으로 의사진행을 막지 말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청와대를 향해서도 "예산안은 국회 문제라고 선을 그을 게 아니라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과 만나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과 리더십이 부족하고 의원들은 국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는 헌법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면서 정치 복원을 주문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국회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라며 "여야는 힘의 대결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정치학자들은 여야간 신뢰의 붕괴와 정치 실종을 우려했다. 고려대 이내영 교수는 "여야간 불신 문제까지 겹치니 모든 것이 사생결단식으로 흐르게 된다"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야당을 다독여 정치를 진전시킬 능력이 부족하고,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협상 추진 리더십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여야와 청와대가 각자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겠다고 하니 엇박자가 나는 것"이라며 청와대의 유연한 자세 등을 주문했다.
6선의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보는 여당이 하는 것"이라며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치력 발휘를 주문했다. 3선의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국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정치인들이 없는 게 낫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여당은 야당을 인정하고 야당 역시 국민이 선택한 여당의 헤게모니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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