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사업 허가를 전제로 민간기업에 기부금을 내도록 약정을 체결한 것은 공익 목적이더라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부 지자체가 각종 사업 인허가를 해주는 과정에서 지역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민간기업에 기부금 약정을 사실상 강제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충청남도가 골프장 사업자 B사를 상대로 "지역발전 협력기금으로 약속한 25억원을 지급하라"며 낸 약정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기부금품 모집행위는, 설사 그것이 공무원의 직무와 외관상 대가관계가 없어 보이더라도, 공권력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관련법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며 "하물며 직무와 대가관계가 인정되는 기부라면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공무집행을 돈으로 사려는 행위에 대한 법의 응징은 매우 엄정하고, 형법상 공무원이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더라도 그 대가로 금품을 받으면 뇌물죄가 성립한다"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기부금 강요 행위의 불법성을 지적했다.
B사는 1990년 골프장 사업 허가를 받고 지역발전협력기금 25억원을 내기로 충남도와 약정했다. 그러나 2004년 회원 모집을 시작한 B사가 "강요에 따른 기부금"이라는 등의 이유로 약속했던 돈을 내지 않자 충남도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약정은 유효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고, 항소심도 "기부금을 직무에 관련된 불법적 보수 또는 부당한 이익이라 볼 수 없다"며 충남도의 손을 들어줬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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